개인적인 글/개인적 생각들

기부하는 교회

모로나이 2016. 6. 14. 02:13





얼마 전 어떤 분께서 블로그에 교회가 쇼핑몰을 세우고 성전을 화려하게 짓느라 정작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하는 돈의 양이 적다는 지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솔직히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지적은 그릇된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통계를 근거로 교회가 얼마나 인도주의적 지원을 베풀었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합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태 6:3)라는 말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방식으로 교회나 교회 회원들이 베푼 것은 통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회가 교회 내에 회원들을 돕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엄청난 양의 돈을 사용한 것은 구체적인 통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가 가난한 교회 회원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사용하는지를 직접 목격했으며 지금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누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감독단의 일원으로 봉사하면서 각 회원들의 어려운 점과, 그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혹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교회가 지원하는 돈의 양을 보면 교회가 가난한 이를 돕지 않는다는 식의 말은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눈 앞에 보이는 통계 자료만 강조하고 있으니 은밀한 가운데 베풀어지는 도움이나 구제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한계라고 말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누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분도 알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것은 도움을 받는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극비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기부를 하는지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라고 하시는데...그럼 이렇게 교회가 각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은밀한 가운데 도와주는 모든 자료들을 공개하라고 하라는 말인가요? 교회가 이만큼 기부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각 회원들이 처한 상황을 까발려 공개하라는 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교회의 주된 사명은 선교사업이었고 구제해야 할 1차 대상은 교회 회원이었습니다. 어느 여인이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 앞에 부은 일을 가지고 유다를 포함한 몇몇 제자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태 26:9) 참으로 이치에 맞는 말 아닌가요? 예수님에게 부을 향유를 살 바에 차라리 그 돈으로 가난한 자를 위해 쓴다면 어떨까...하지만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0,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우리와 있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 하는 일은 좋은 일이라는 요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성전 사업이나 교회 건축과 관련된 일을 비유하여 차라리 그 돈이었다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일텐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시각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믿지 않은 자들에게 있어 성전 의식이 전혀 쓸데 없고 돈만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영의 세계가 실재함을 확인하고 있는 중대한 의식입니다.

 

하지만 저도 솔직한 심정에서 보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태 8:20)는 주님을 위해 그렇게까지 화려하게 성전을 지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비록 머리 둘 곳은 없으셨지만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사도 7:49)고 하셨던 주님에게 지상의 화려한 건물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전 내에서 진행되는 의식의 중요성과 그 성스러움을 절대로 격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화려한 모습으로, 성전을 장식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겉모습은 그리 화려하지 않아도 성별된 가운데 신권의 권능으로 의식을 집행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요즘에는 새롭게 지어진 교회의 예배당의 그 화려함은 대형 교회에 버금갈 정도라고 합니다. 1세기 당시에는 교회당이 없어서 각 개인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당이 초라하고 표준 건물이 아닌 전세건물이라 해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 18:20)는 말씀처럼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은 영이 가득차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의미의 안타까움이라면, 그래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쓰기 보다는 성전의 화려함을 장식하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동의하고 저 역시 100% 공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를 교회를 비판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한 것이라면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성전의 화려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구요..하지만 그 속에서 집행되는 의식과 그 의미까지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가난한 자를 위하는 님의 뜻은 충분히 동의하지만 저를 더욱 깊이 확신시키고 싶으시다면 님은 다른 이들을 위해 얼마나 기부하고 있는지, 총 수입의 얼마를 다른 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는지 밝혀 보시길 바랍니다. 그토록 좋아하시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하셔서 님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돈이 제 주변의 다른 회원들이 하는 것 이상이라면 머리를 숙이고 님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여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