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의 권고로 인해 신천지에 다니시는 분과 카카오톡으로 나눈 토론 중 제가 쓴 답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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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이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1.천국 비밀에 대한 비유
형제님께서는 “'성경의 모든 내용이 비유로 감추어져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럼 무엇이 비유인가할 때는 '천국비밀'에 관한 내용들만을 비유로써 감추어놨다고 가르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그 주장에 수긍합니다. 다만 문제는 신천지는 역사적인 예언이나 실제로 일어났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조차도 “천국의 비밀”이라며 ‘비유’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아니라면 정정해 주세요), 신천지에서 말하는 천국의 비밀이란 “신천지의 비유풀이 말씀”이나 “약속의 목자인 이긴자 이만희 총회장”의 등장을 지칭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비밀이란 이긴자의 등장도 아니고 신천지의 비유 풀이 말씀도 아니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 1:26,27)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로새 2: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 5:32)
여기서 인용한 구절만 자세하게 읽어 보아도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 되신 교회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다음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태 13:11)
여기서 천국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밀을 “아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기노스코’는 인격적으로, 경험적으로 무엇인가를 알고 인식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7:3 비교) 그리고 비밀을 아는 “너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며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지칭합니다. 실제로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의 말씀을 동일하게 읽고 연구해도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제가 신천지 주장 중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 중 “씨”만 나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려는 것 같은 태도였습니다. 물론 마태 13장을 비롯한 몇몇 구절에서 씨앗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유하고 있고 실제 직접적으로 명시(누가 8:11)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에 근거해서 씨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알아보면 단순히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씨앗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근거는 전무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성경에서는 씨앗을 다음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식물의 씨앗(창 1:11-12), 말씀(마 13:23), 생명(고전 15:36), 후손(요 7:42), 성령(요일 3:9), 하나님의 아들(마 13:38), 아주 작은 것(마 13:32)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씨가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짝이 있다고 씨만 나오면 무조건 “말씀”이라는 한가지 뜻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비유 풀이가 한 두 개가 아니더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감추려기 보다는 동일한 특성을 가진 것들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4)는 말씀처럼 예수께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사용하셔서 그분이 구세주가 되심을 증거 하셨던 것입니다. 다만 마음이 완악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그러한 비유가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신비”가 될 뿐이지요.
2. 창조나 재림에 관한 부분
물론 님의 지적처럼 창조나 재림에 관한 부분 중의 일부는 상징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제한된 표현으로는 그 모든 것들을 상세하게 묘사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상징과 비유를 사용할 수 있겠지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해와 달이나 별, 그리고 씨앗 , 동물과 같은 것들도 전부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은 큰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저는 창조에서 말하는 “날”이라는 개념이 실제 24시간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에서는 총 6일에 걸쳐러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하루”의 개념은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창세기 1:14)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실제 하늘의 광명체들로 인해 낮과 밤이 구별되는 것은 넷째 날이었습니다. 그런 의미라고 보면 창조가 진행되는 “날들”은 흔히 말하는 24시간 개념이 아니라 일이 진행되어가는 “단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실제로 후기성도들은 “창조의 여섯 단계”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총 6가지 단계를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보는 것이며 그 단계가 실제 몇 년인지 아니면 수십만 수백만 년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이 “날”이라는 개념이 실제 24시간이 아니라고 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과 어둠, 낮과 밤, 그리고 식물과 동물 이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풀 근거는 전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훗날 모세를 통해 안식일 계명이 주어졌을 때도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촐애굽기 20:11)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근거 중에 하나는 그분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헤미야 9:6)
이 구절은 다음 구절까지 계속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과거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장에서 “영적 세계의 창조”라는 이름으로 비유를 근거로 사용했을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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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 신천지에서 공부할 때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을 수 없는 신비함과 재미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짝이 있다고 해서 여기서 퍼즐 맞추듯이 단어 가지고 연결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바이블 코드라는 것이 유행한 적 있습니다. 띄어쓰기가 없는 히브리 성서의 행과 열을 잘 맞추어서 쓰면, 이를 특정한 방향으로 읽을 때 미래의 예언을 알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도 퍼즐 맞추는 것 같아서 흥미롭고 실제 이런 식으로 예언이 성취된 것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미가 있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적이라거나 하나님의 신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저자가 무슨 의도로 그 글을 썼는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그저 퍼즐 짝 맞추듯이 특정 사건에 어거지로 맞춘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흥미 위주일 뿐이지요.
저는 신천지에서 “성경에도 짝이 있다”는 말에 근거해서 단어를 이리 저리 연결해서 해석하는 것을 보면서 참 의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이 도대체 성경에 어디 있냐는 것이었죠.
그런데 신천지 분들이 다음 구절을 근거로 제시하더군요.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사야 34:16)
사실 이 구절을 대충 읽어 보면 여호와의 책, 즉 이 성경에는 빠진 것이 없고 짝이 없는 것이 없는데 이를 바로 하나님의 영이 모았다는 식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비유와 상징을 이해하는 방법인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성경에 짝이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15-17절을 읽어보면 16절에 나오는 “이것들” 성경이 아니라 “짐승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짝이 있다는 것도 말씀에 짝이 있음이 아니라 짐승에게도 짝이 있다는 말임을 알게 됩니다. 이에 대한 다른 성경 번역본을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야훼의 기록을 찾아내어 읽어보아라. 이런 모든 짐승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리라. 그것들은 직접 야훼의 입에서 떨어진 분부를 받아 그의 입김으로 몰려온 것들이다.” (공동번역)
“주님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 짐승들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겠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친히 입을 열어 그렇게 되라고 명하셨고 주님의 영이 친히 그 짐승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새번역)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 동물들 중에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되도록 명령하셨고 성령께서 그것들을 함께 모으셨기 때문이다.” (현대인 성경)
이렇게 다른 번역본에서는 전부 이 구절이 성경에 짝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앞 구절에서 설명한 것처럼 동물들, 짐승들에게 짝이 있다는 말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에 짝이 있다는 이 구절은 결국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성경에 짝이 있다는 말이 근거가 없는 것이며, 그렇게 해석해서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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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Youtube를 통해 신천지 말씀 강의를 많이 들어봤는데 그 결론이 계속 “이긴자 이만희 총회장”으로 맺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만두었습니다. 예수의 영이 이만희 총회장님에게 내려온 것이 성경에 예언된 재림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더 황당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신천지에서 말하는 시대별 기별자(구원자, 목자)라는 개념과 비슷한 것이 후기성도에게도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아모스 3:7)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그분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를 주셨다고 보며 오늘날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믿고 있죠. 현대의 초기 선지자는 조셉 스미스미스며 지금은 럿셀 엠 넬슨 회장님을 살아 있는 선지자와 계시자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그분들을 예수님의 영이 임한 구원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하늘아래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들이라고 보는 것이지 시대의 구원자이며 성경에 예언된(?) 이긴자라로 보진 않습니다. 넬슨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그 이후 다른 선지자들이 부름을 받고 계속해서 성도들을 주님의 길로 인도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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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인 예언이나 실제로 일어난 일을 비유로 말했다는 일단 창조 기록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단계들을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을 비유와 상징으로 보는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일어날 영광스러운 예수 재림의 날도 결국은 상징이며 현재 거의 모든 것이 신천지 교회에서 성취되었다고 한 것도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들을 비유로 뭉뚱그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상징이나 비유라고 해석하지 않으면 이만희 총회장님이 들어설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외에 다른 구원자를 제시하는 모든 단체들이 성경은 비유로 되어 있다고 해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참 많은 단체들을 공부해 봤지만 방법이 너무나 유사합니다.
2. 천국의 비밀이라는 것은 이미 전의 글에서 성구를 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무슨 상징이라는 이름으로 난해하게 풀이할 것도 없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로새 1:26, 27)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에베소 5:3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골로새 2:2)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는 성도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머리가 되시고 몸을 이루신 그분의 “교회”(에베소 1:22, 골로새 1:18)도 천국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신천지분께서 자주 강조하시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들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그분의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비유 풀이나 이긴자의 등장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왜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다고 하셨죠? 감추려고요??? 아닙니다. 그 반대죠.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태 13:13)
보세요. 예수께서 여러 차례 그분이 성경의 약속된 구세주며 그분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요한 5:39 참조)하지만 하도 마음이 완악하고 깨닫지 못하니까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신 것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우리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했을 때 상대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가 알고 있는 현상이나 이야기들을 빗대어 설명하지 않던가요? 예수께서는 모든 이들이 그분에게 다가와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디모데전서 2:4) 주변의 사물을 빗대어 비유하신 것이죠. 특히 주변에서 흔히 보는 자연 현상을 근거로 말입니다.
천국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한다는 성경 구절을 생각해 보고 예수께서 언급하신 천국에 대한 6가지 비유를 보겠습니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 : 이 구절에서 말하는 씨는 “천국 말씀”(마태 13:19)이며 마음의 상태에 따라, 개인의 영적인 수용성에 따라 말씀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 10:17)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색다른 비유 풀이나 이긴자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 여기서 말하는 겨자씨를 말씀이라 볼 증거는 전혀 없으며 그저 “아주 작은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 13:32) 그 당시 유대인들의 관용구적인 속담에서 “겨자씨보다 작다”는 의미는 아주 작은 것을 상징하였다고 하는 것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겨자씨가 아주 작지만 그것이 심겨졌을 때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소수 인원으로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훗날 전세계로 확장 되어감을 의미합니다.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 : 누룩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팽창하고 확장시키는 개념이 있습니다. 빵 반죽을 크게 팽창시키는 효소의 개념이죠. 이는 앞서 언급한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확장되는 것처럼 누룩이 들어갔을 때 빵이 팽창하는 것을 빗대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전세계로 확장되어 감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 2:2,3).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즉 이 구절에서 말한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그분에 대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함을 설명합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 이 구절도 역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모든 것들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 3:8)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소중하여 그 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취급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희생하고 배설물로 여길 정도로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 이는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복음이란 그물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오는데 훗날 하나님의 천사가 의로운 자와 그릇된 자를 구분하여 심판까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들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그분의 교회의 확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리고 님께서 인용하시지 않았지만 가라지의 비유에서도 그 비유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마태 13:37,38)
누구나 명확하게 알도록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 것이 인상적이며 특히 좋은 씨는 “좋은 말씀”이 아니라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씨를 무조건 말씀으로 볼 근거는 전혀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고전 15장, 요한7장에 나오는 씨를 신천지가 말씀으로 해석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님께서 확인 질문을 하셨을 때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드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고 그저 핸드폰 상에서 간단하게 답변을 해야 했기에 그냥 설명해 보라고 말씀을 드린 것이지만 그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 의도는 그처럼 성경에 나오는 “씨”라는 단 한 가지 예만 살펴보더라도 같은 단어가 문맥에 따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음을 밝히려는 것이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요셉의 꿈에서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장면을 근거로 성경에 나오는 거의 모든 해와 달 별들을 “사람들”로 해석하는 데 그처럼 문맥과 무관하게 무조건 일괄적으로 해석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나오는 해와 달은 문자 그대로 해와 달인 경우도 있고 다른 의미로도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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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요.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서 창세기 1장의 창조 기록이 문자 기록이 아니며 상징이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왜 느헤미야 9:6이나 히브리 3:4에 나오는 이야기는 굳이 상징이 아닌 실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근거로 봐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 날의 빛은 무엇이고 넷째 날의 해는 무엇입니까? 만약 첫째 날의 '빛'이 태양이라면 어째서 넷째 날에 또 해를 만들고 첫째 날의 '빛'이 태양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빛이 나오는겁니까?
님이 오해하신 것이 있습니다. 태양은 빛의 근원이 아닙니다. 단지 지구에 빛을 비추는 천체이며 빛을 발산하는 하나의 광원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전깃불도 빛의 광원이며, 타오르는 불도 광원이며, 번개도 광원입니다. 이 넓은 우주에는 지구와 태양이 존재하는 태양계와 같은 은하계가 수없이 많으며, 그 은하계에는 빛을 발산하는 태양과 같이 빛을 발하는 광원의 행성도 많이 존재한다고 하지요. 빛과 태양을 동일시 여기고, 태양이 없는데 빛이 어떻게 존재하느냐고 묻는 것은 과학적인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첫날 빛이 창조된 것이 맞습니다. 만약 빛이 없더라면 태양을 빛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2) 창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창1:3 이전에 창1:2에서 이미 땅과 하늘(렘4:23,28), 심지어는 수면까지 존재합니다.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후기성도들은 무에서 유의 창조를 의미하는 크레아씨오 엑스 니힐로(creatio ex-nihilo)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미 영원 전부터 존재해 있던 어떤 것을 이용해서 우주를 조직하신 것이라는 개념을 믿습니다. 일례로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하다”라고 번역된 bara라는 히브리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재료를 가지고 “조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후기성도만의 경전인 아브라함서에서도 창조의 기록에 대해 기록하면서 “... 하늘들과 이 땅을 조직하며 지으시더라 (organized and formed).”(아브라함서 4:4)고 표현합니다. 그 외 교회의 선지자인 조셉 스미스를 통해 주어진 계시에서 더욱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성경만을 두고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은 안하겠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기 전에 이미 뭔가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조직하고 체계화시켜서 만물을 지으셨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 부분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이상해서 상징으로 봐야 한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3) 셋째 날에 씨 맺는 수목들을 심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수목들이 필요한 빛을 제공하는 해는 넷째날에 만들어집니다. 이 식물들은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창세기 2:5)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식물의 창조는 셋째 날에 이루어졌지만 그 식물이 본격적으로 땅에 나게 한 것은 그것을 경작할 인간이 창조된 이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해석도 가능한데 태양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첫째 날에 빛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빛으로 수목이 광합성 작용을 통해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창세기 1장의 몇몇 구절들이 모순처럼 보인다고 해서 모든 구절을 상징으로 볼 근거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4) 고후4:6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두고 난하주에 창1:3을 인용했습니다. 많고 많은 '빛' 중에 창1:3을 인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난하주는 성경 필자가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훗날 학자들이 성경을 편집하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한 것이지요. 신천지에서는 “인간의 주석”을 하나님의 말씀과 대적하는 사탄의 것이라고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굳이 여기서 인간의 주석을 근거로 설명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실제 창조 시에 빛과 어둠을 나누신 장면을 빗대어 영적인 의미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을 두고 인생의 험난한 길을 예수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식의 영적 의미로 볼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예수께서 실제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이 거짓이거나 상징으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구약 시대에 양을 제물로 바치는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의미하고 상징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실제 구약에서 양을 바친 일이 원래 없었던 일이거나 상징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6. 사34:16을 두고 '성경에 짝이 있다'라고 푼 것은 확실히 저희 잘못인것 같습니다. 이 성구의 앞뒤구절은 보지않고 성급한 판단을 내린거 같으나 센터에서 같이 말씀 배우실 때 그들도 완전히 잘 알지는 못하기에 생긴 실수같습니다. 너그러이 용서 바랍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초등과정 성경론 제3과에서 ‘성경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다루면서 이사야 34장 16절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구요. 암튼 그 구절을 이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셨다고 하니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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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인 사실을 상징으로 보는 예시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라고 하셨지요. 일단 지금 논의하고 있는 창조의 기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신천지에서는 유재열씨의 장막성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상징으로 풀이하고 있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기원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멸망과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징조에 대한 예언 역시 전부 장막성전이라는 한국에 존재했던 미비한 단체에 초점을 두고 풀이한다는 것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6:11절에 보면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는데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에서는 여기에 말하는 동방이 한국이며 독수리는 이만희 총회장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이 한국이라는 증거는 없으며 그 독수리가 이만희 총회장이라는 뜻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독수리는 이사야 45:1~3절에서 나오는 고레스로서 예루살렘을 건축할 왕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고레스는 이스라엘 동방에 위치한 페르시아의 왕으로서 예루살렘 건축령을 내렸습니다. 실제 역사로 성취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모든 역사적인 사실을 신천지는 상징이라고 하며, 그것도 20세기 출현한 장막성전과 신천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실제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영적인 교훈을 이끌어 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교훈에 강조를 둔다고 해서 실제 일어난 일마저 부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 비유의 목적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태 13:13)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마가 4:11,12)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누가 8:10)
동일한 말씀을 하는 세가지 버전의 글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직접 비유의 이유로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인용하셔서 완악한 자들에 대한 정죄의 이유를 설명하신 것이 됩니다.
만약 문자 그대로 예수께서 특정한 누군가가 죄사함을 못 받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이해를 한다고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왜곡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 10:13)고 하셨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고 하셨는데 특정인에게 죄사함 주기 싫어 일부러 못 깨닫게 했다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갖고 계신 의도와 정면으로 대치가 됩니다.
그럼 예수께서 이사야의 구절을 인용하여 마치 예수께서 몇몇 이들에게 일부러 죄사함을 안주려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내용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그와 비슷한 표현의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출 10:27)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1:10)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였기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은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읽어 보면 하나님은 정말 잔인한 분입니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놓고서 수많은 재앙을 불러 일으키고 심지어 장자들을 죽게 함으로서 결국은 그 재앙의 원인이 바로가 아닌 하나님인 것처럼 보이게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에서 사용되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할 경우가 나오는 오류입니다. 실제 다른 구절에서는 바로가 스스로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사무엘상 6:6)
이 구절에서는 분명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즉 바로 스스로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고 하나님을 조롱한 것이지 하나님이 세팅해준 그림대로 허수아비 노릇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 하나님의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표현했던 것일까요?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시편 81:11)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로마1:24,26)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선택 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마음을 완악하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죠. 그래 네 마음대로 해봐라...는 식으로 방임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성경 필자들은 마치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의 예언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 마치 하나님이 몇몇 이들에게 구원을 안주려고 일부러 비유를 사용하신 것처럼 보면 성경 전체의 흐름을 왜곡하게 됩니다. 바로의 경우처럼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보고 들으려고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 이들을 하나님은 그냥 임의대로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한 비유가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럼 비유의 원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태 13:35)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마가 4:33)
이 구절들을 잘 읽어보세요. 비유를 통해서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가르치셨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이해하기 쉽도록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셨지만 마음이 완악한 자들에게는 오히려 그러한 비유가 장애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께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인용하신 것이구요.
나단이 다윗이 범한 죄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너 이러이러해서 잘못했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12장을 읽어 보세요. 성읍에 살고 있는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그 비유를 듣고 다윗은 부자가 행한 일에 대하여 화를 내며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때 나단은 비유에 사용된 부자가 바로 다윗임을 설명해 주는데 그 때 다윗은 그 비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됩니다. 이처럼 비유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일들은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셔서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운명을 말씀하셨는데 몇몇 이들은 그런 비유가 자기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알아차려 길길이 날 뛴 자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마태 21:45,46)
비유는 단순히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밝히고 듣는 자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한 교수법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도 이렇게 비유의 목적에 대해 정리하겠습니다. ^^
3. 해와 달에 대한 비유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해를 신천지에서는 목자라고 번역합니다. 그리고 (‘달’은 ‘전도자’, ‘별’은 ‘성도’라고 비유풀이를 하죠. 맞나요? 아니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근거가 있는 내용일까요?? 아니요. 저는 전혀 그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해”가 다양한 방식을 비유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
이 구절에 나오는 ‘해’는 목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의로운 해’는 빛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1)
여기서는 ‘해’는 목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뜻한다고 하지요. 목자라는 뜻이 어디에 있나요?? 굳이 창세기에 나오는 해를 상징으로 풀어야 한다면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 1:16)
위 창조에 대한 내용에서 ‘해’를 목자이며 ‘달’을 전도자라고 해석할 근거가 있나요? 저는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낮의 광명으로 해를, 밤의 광명으로 달과 별을 창조하셔서 빛을 주관하게 하신 것으로 보며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계 12:1)
신천지는 이 구절에 나오는 해와 달과 별이 모두 비유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본문의 해와 달과 별은 비유적인 내용입니다. 하지만 해를 목자라고 비유하면, 목자(여자)가 목자(해)를 입는다는 해석이 되므로 더욱 이상한 의미가 되지 않나요? 더욱이 목자의 발 아래에 전도자가 있고 머리에는 열두 성도의 면류관을 썼다고 해석하여야 하는데 얼마나 이상합니까?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40-41)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와 달과 달의 영광이 서로 다르듯 부활의 영광도 다름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여기에 어디 목자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까?? 저는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4. 천지창조
우리가 성경의 몇몇 구절을 현재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무조건 “상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 역시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고 우리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 상징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신천지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창조론을 거부하고 우연과 우연이 거듭되어 만들어진 단백질이 결국 우리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을 신봉하는데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해서 창조란 애초에 특정한 것을 상징한다고 봐야 하겠습니까? 최소한 창세기 1장의 내용이 전부 상징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근거할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그저 “과학적으로,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를 근거로 든다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힘듭니다. 그것도 창세기 1장 창조 기사가 유재열씨의 장막성전과 신천지 창립을 상징한다고 하다니요???
빛은 스스로 발생하진 않았지요.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세기 1:3)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지요. 태양과 달, 별과 전등의 빛은 원래의 빛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을 발산하는 매개체일 뿐입니다. 빛은 전자기파면서 광자입니다. 빛 먼저 만들고 태양을 나중에 만드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세요. 빛이 창조되지 않았다면 태양은 빛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전기 기구가 있다 하더라도 전기가 없다면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빛과 태양을 동일시하는 것은 전기와 전기 기구를 동일시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제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거든 신천지 분들 말고 공정하게 종교가 없는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빛과 태양이 동일한 것이냐구요.
그런 빛을 가지고 식물을 기르고 생육하게 했다고 하여 이상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빛이 없이도 식물과 동물을 자라게 하실 수 있는 분 아닌가요?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 불가능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 그게 오늘날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믿기지 않아서 구절을 상징으로 봐야 한다니 저는 도무지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믿으며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죽음 이후 부활 승천, 재림은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럼 창세기 1장의 기사는 정말 문자 그대로 만물에 대한 창조기록일까요? 저는 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기 보다는 실제 구약 시대 선지자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 봐야 한다고 봅니다. 정말 그들도 창세기 1장의 내용을 상징으로만 봤을까요?? 특히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는 그 기록을 어떻게 봤는지 이해해 봐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 20:8,11)
하나님께 직접 받은 십계명의 일부이죠.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하나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찬송을 돌릴 이유가 바로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어디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해와 달 별들이 목자나 전도사로 볼 근거가 있습니까?? 그리고 다음 구절도 보죠.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신명기 4:19)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해와 달과 별들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고 권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창조하신 모든 천체가 곧 천하 만민을 위하여 정하신 것이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와 달과 별이 상징이라고요??? 그런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가 몇몇 구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임을 인정하고 기록하였는데 왜 저자의 의도와 전혀 일치하지 않은 의미로 해석을 하면서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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