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에 어떤 분이 남겨 주신 글입니다.
"몰몬인들 존경합니다 그러나 전셰 교리는 터무니 없이 비성경적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때 흙으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영안 호흡을 불어 넣어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세는 없으며 아마 제 생각인데 태아의 두뇌가 특정 가간 성장하면 어머니 뱃속에다 하나님이 아담과 같이 호흡을 넣어서 자유의지와 인격을 가진 영혼이 시작되는 것이며 전세 교리는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있어다는 인격의 분열성을 초래하며 이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맞지 않습니다."
저의 답변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창세기는 이 지구와 그 안에 거하게 된 동식물들, 그리고 최초의 인류에 관한 기록입니다. 당연히 그 기록에는 창조 이전의 이야기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요. 창세기 1장 1절의 기록을 보세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천지, 즉 이 땅과 보이는 하늘에 관한 기록입니다. 모든 우주 만물이나 영적인 세계의 창조에 대해 다루는 기록이 아닙니다.
실제 후기성도가 영감받은 경전으로 믿는 모세서 1:40절에는 이 창세기 기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아들 모세야, 나는 네가 서 있는 이 땅에 관하여 네게 말하리니, 내가 말하는 것들을 기록하라”
즉 모세가 서 있는 땅, 지구의 창조와 관련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창세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 기록을 예로 들어 “창세기에는 전세에 관한 기록이 없다. 그렇기에 전세 교리는 비성경적이다”라고 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창세기에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요. 뱀의 형상으로 등장한 사탄이 왜 사탄이 되었는지, 지구가 창조되기 전 하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창세기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기록은 지구의 창조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 인간에게 탄생 이전으로서의 시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구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님의 우려와는 달리 전세 교리는 인격의 분열성을 초래하거나 완전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어긋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1.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 1:5)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적에 하신 말씀으로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주님께서 그를 아셨고 성별하였으며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언급하는 것일 뿐 예레미야라는 개인의 전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동사로 쓰여진 세 단어를 유심히 보시길 바랍니다. “알았고” “성별하였고” “선지자로 세웠다”는 말입니다. 이 구절에서 쓰인 단어들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의 영적인 능력과 속성을 아셨다는 말입니다. “알았다”는 말을 “하나님의 미리 아심”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성별, 즉 성스럽게 구별하셨다고도 알려줍니다. 이는 단순히 미리 아심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여한 행동을 나타내는 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누군가를 성별한다는 과정은 실제 예레미야가 참여한 곳에서나 가능합니다. 또한 누군가를 선지자와 같은 직분으로 세우는 자체도 실제적인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 미리 아셨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분명 태어나기도 전에 예레미야를 성스럽게 구분하여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어머니 뱃속에 입김을 불어넣으셔서 갑자기 한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영적으로 존재하던 이를 어머니의 태속으로 보내어 육신을 입고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 1:4)
이 구절에서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알려주지요.
2.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욥기 38:4~7)
이 구절은 욥이 환란에 처해 있으면서 하나님과 나눈 토론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그분의 능력을 확신시키면서 질문을 하시지요.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말입니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욥이 당시 어딘가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비록 욥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의 상황을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질문을 하심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바로 “그 때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기뻐 노래한다는 행위는 당시 만물이 창조되던 당시 의지와 생각을 가진 존재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즉 이 지상에 태어나던 우리 인간들은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할 당시에 기뻐서 노래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알려줍니다.
어떤 분들은 이 구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존재가 아니라 천사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히브리 1:5)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에도 천사 중 누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부르신 적이 없다고 알려줍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히브리 1:4)는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천사들은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해 섬기라고 보냄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욥기에 나오는, 창조 과정 중에 기뻐 외쳤던 “하나님의 아들”은 누군가의 해석처럼 천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우리 인간들을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3.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분명히 알려주지요. 우리의 몸은 흙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상식적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왔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영은 원래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 존재도 없던 것이 그냥 하나님이 한 번 훅 입김을 불어넣자 떡 하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있던 존재가 육신을 입고 인간이 되었으며, 죽음을 겪는 과정에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은 다시금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브리 12:9)
우리에게는 육신을 주신 아버지가 있고 영적인 몸을 주신 영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바로 동일한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난 형제 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전 이러한 전세의 가르침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우연히 이 지상에 던져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영적인 존재였던 우리 인간들을 더욱 훈련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이 지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도록 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극의 첫 막을 보고 이해해야 다른 막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전세의 교리는 우리가 왜 살고 있으며 죽음 이후에는 어떤 삶이 펼쳐질 것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하게 해줍니다.
그런 아름다운 전세의 교리가 어찌 인격의 분열성을 초래하며 이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와 교리 > 구원과 승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가? (0) | 2019.05.01 |
---|---|
영광의 왕국들 (0) | 2018.10.28 |
내세에 관한 추측들... (0) | 2015.01.10 |
"세가지 영광"은 스웨덴보그의 주장에서 표절한 것인가?? (0) | 2013.09.24 |
(몰몬교) 사람이 '신처럼 된다'는 말은 신성 모독인가? (0) | 2010.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