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터넷 상으로 자칭 이단 사냥꾼인 어느 분과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투브 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계시로 성경을 통달했다면서 이단 종파라는 단체의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하거나 그들의 활동지역에서 반말로 비아냥거리며 비난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약간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 카페에 들어가 자신의 동영상을 소개하며 성경 공부를 유도하다가 추방된 적도 있고 이단 상담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거액의 돈을 요구한 적도 있는 전력이 있지요.)
아무튼 이분과 토론을 하면서 느낀 것은 “참된 복음이란 정말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싶었는지 실제 성경 내에서도 등장하지도 않은, 훗날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전문적인 신학 용어들을 남발하면서 그것도 모르느냐면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했었습니다. 성경만이 판단기준이기에, 몰몬경을 비롯한 현대의 계시는 무가치한 것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정작 사용하는 것들은 성경이 아닌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용어들과 이론으로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하나님을 정의하고 구원을 판단하였습니다. 마치 그러한 것들을 모르면 성경에 대해 무지한 이단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나 봅니다. 정말 본인이 하는 이야기들을 정작 당사자들은 이해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암튼 그 이후에 제가 느낀 것은 이렇습니다. 복음은 정말 단순한 것인데 왜 훗날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복음을 복잡하게 만든 것일까? 신학적으로 이론을 정비하는 이유는 복음에 대한 이해를 체계화해서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냥 몇몇 학자들의,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이들만이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성벽을 만들어 놓고 다른 평범한 이들의 이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예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근거한 것이며 복음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는 말씀처럼 무식하거나 지식이 많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진리를 알아 구원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데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뭔가 학술적이고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복음이 뭔가 위대해 보이고 심오하게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런 표현들을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가 싶습니다. 성전에서 배우지요. 훗날에 “경전과 혼합된 인간의 철학”을 가르칠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경전에서, 특히 몰몬경에서는 복음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명백하게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합니다. 사실 현재 신학적인 표현과 용어들로 오히려 이해가 어려워진 성경의 경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기록된 것들이 명백하고 순수하며 지극히 귀하며 모든 사람이 쉽게 깨달을 수 있었느니라.”(니파이전서 14:23)
처음 유대인의 입에서 나올 때는 모든 사람이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명백하고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복잡해졌지요?
“이는 다른 모든 교회보다 가장 가증한 것이니라. 이는 보라 그들이 어린 양의 복음에서 명백하고 극히 귀한 많은 부분들을 제하여 버렸음이요, 주의 많은 성약을 또한 제하여 버렸음이라.”(니파이전서 13:26)
‘크고 가증한 교회’로 표현된 사탄의 조직에 의해 많은 명백한 부분이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성경의 진리의 일부를 제거함으로서 이해하기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수많은 해석과 학설, 이론들이 등장해서 중구난방 교파들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복잡함을 해결하기 위해 복음이 회복된 것 아닐까요?
몰몬경에 등장하는 니파이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명백함을 자랑하며, 나는 진리를 자랑하며, 나는 나의 예수를 자랑하노니, 이는 그가 나의 영혼을 지옥에서 구속하셨음이라.” (니후 33:6)
그렇습니다. 그는 명백한 진리를 자랑하며 그 진리가 증언하는 예수를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다음 구절들에서도 복음이란 얼마나 명확한 것인지를 여러차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중에, 곧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장 명백하게 그들에게 지식이 주어졌을 때, 그들이 이를 찾으려 하지 아니하며 위대한 지식을 깨달으려 하지 아니함이라”. (니후 32:7)
“또 그는 사람의 자녀들에게 명백한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시며, 또 그는 그들 모두에게 그에게로 나아와 그의 선하심에 참여하도록 권하시며” (니후 26:33)
“또 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잘못 알아들을 수 없는 명백한 말로 우리에게 알려졌나니, 이는 우리가 낯선 땅에서 방황하는 자 됨으로 인함이라.” (앨마 13:23)
복음이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서, 잘못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장 명백하게 전해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배웠거나 안배웠거나,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나 배우고 이해해서 구원받을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후기에 회복된 복음은 배우고자 하면 누구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함’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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