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그 제목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사무엘상 15:22)입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지도자에게 순종함”이란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연차대회나 스테이크 대회, 혹은 와드대회처럼 많은 이들이 모인 장소에서 교회 지도자를 “지지”하기 위해 손을 높이 드는 행사는 빠지지 않습니다. 교회 연차대회 말씀에서도 “순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듣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주의적 사상이 팽배한 시대가 되면서 순종의 의미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뭔가 구시대적이고 우리의 선택 의지와 역행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순종을 앞뒤 전후 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지도자들이 권고 하는 것이 맹신이 아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건 내 생각과 맞지 않은데…아무리 봐도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냥 지도자들은 무조건 순종만 강요하는 것 같고 그에 대해 역행을 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고...뭔가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저도 이해를 못했습니다. 전후 사정 따지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라고 귄위주의적인 태도로 훈계를 늘어놓으시는 지도자들에게 불만을 품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되면서부터 순종의 중요성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 아이들이 전과 다르게 반항적이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죠.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리긴 하지만 말을 듣지 않고 말대꾸를 따박따박 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사춘기 시절에는 어떻지나가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자녀였지만 성장하고 성장호르몬이 분비되고 고집도 생기고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점차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윽박지른다고 될 것도 아니라 부모님의 가슴은 타들어갑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영적인 사춘기를 겪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처음 침례를 받고 막 열정적으로 신앙을 할 때는 지도자들의 권고에 대해 100% 순종하고 모든 부름에 “네!”라고 답변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가면서 이런 저런 지도자들의 인간적인 면이 보이고, 자의식이 생깁니다.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지도자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텐데..” “이거 내가 왜 순종해야 하지?” 이런 끝임 없이 자기 생각과 지도자들의 권고 사이에서 갈등을 하면서 영적인 반항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교회 지도자들을 부르셔서 그분의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아닐까요?
부모가 되면서 자녀들에게 하는 잔소리나 순종하라는 말은 결코 그 자녀를 억압하고 그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며, 힘들게 하려하거나 단순히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설령 그렇게 이해한다 할지라도) 어린 시절을 경험해 봤고 사회생활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 오면서 우리 자녀들은 내가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올바르고 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자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이런 저런 지시사항을 내리고 또한 자녀들은 그대로 따라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 생각대로만 하고 싶고 부모님의 간섭이 짐이 됩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을 어떻게 극복했던지 간에 그 시기를 극복하게 될 때가 됩니다. 우리 말 안 듣는 아이들도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나면 자기가 했던 그 시기를 부끄럽게 생각할 때가 오게 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바르게 되라고 그렇게 잔소리 하실 적에 그 말에 순종했더라면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텐데...하고 말이죠.
우리의 영적 상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지시사항이 그냥 잔소리같고 듣기 싫고 반항했던 그 시기가 지나서 ‘아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조언들이 결코 나를 억압하거나 귀찮게 하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되라고 하신 것이구나. 그래서 그토록 큰 희생도 하신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되듯이 하나님과 지도자들을 통해 오는 지침들과 부름 등이 결코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주님이 마련해 주신 더 큰 축복을 받기 위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이로구나”라는 깨닫게 될 날이 옵니다.
그런데 실제 사춘기와 차이가 있다고 하면 영적인 사춘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그냥 시간의 흐름에 맡겨서는 안되며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춘기의 절정을 보여준 두 명의 철부지들 있습니다. 바로 레이맨과 레뮤엘입니다.
레이맨과 레뮤엘은 그들의 아버지였던 리하이(선지자)의 명에 대해 끝임 없이 투덜거리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뭐 하라고 하면 계속 투덜투덜... 그 이유에 대해서 몰몬경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이같이 레이맨과 레뮤엘은 연장자들이면서도, 참으로 그들의 부친을 거스려 불평하였나니, 그들이 불평한 것은 그들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행하심을 그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니전 2:12)
이들은 나이도 많고 등치도 큰 자들이었지만 그들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끝임 없이 불평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냥 부모님은 날 괴롭히려고 계속 저런 소리를 하는거야. 내 생각은 이런데 아버지는 이게 아니래...전형적인 영적 중2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동생 니파이는 영적인 중2병을 잘 극복했는데 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 니파이는 몹시 어렸으나 체격은 컸으며,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자 심히 원하였던지라. 이러므로 내가 주께 부르짖었더니, 보라, 그가 나를 찾아오사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으므로 나는 나의 부친이 하신 말씀을 모두 믿었느니라. 그리하여 나는 나의 형들처럼 부친을 거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니파이전서 2:16)
니파이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주님께 간구하였으며 그제서야 주님께서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조언을 주시는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형들처럼 아버지를 거역하지 않고 부름이 올 때마다 “가서 행하겠나이다”고 외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투덜거리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그는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아버지이심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굳건하였기에 그분이 선택하신 그의 종 아버지 리하이를 통해 주시는 조언에 기꺼이 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설령 그분이 지시하시는 모든 것들을 이해하진 못했을 지라도, 그분이라면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주실 것임을 확신했기에 나머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특정 권위나 주변 분위기에 마지못해 응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았기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축복을 맛보았기에 철저한 신뢰를 기초로 한 자발적인 선택입니다. 이 교회가 주님의 참된 교회이며 하나님의 신권 라인을 통해 부름 받은 지도자가 우리에게 통해 주는 조언들이 그분의 뜻임을 알고 있는 성도라면 기꺼이 순종할 것입니다. 설령 인간적인 면으로는 좋아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분들이 받은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면 기꺼이 순종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요?
반대로 생각해서, 난 도무지 이런 저런 계명이나 조언에 순종하기가 싫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나는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서 확신하고 있지는 않는지?”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해주시는 조언들이 그저 불만스럽고 마음에 안들어 투덜거리고 반항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은 아닌지 자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결론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꺼이 그분에게 우리에게 주시는 조언을 따르는, 영적인 중2병을 벗어나 순전히 자발적인 선택에 근거한 순종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에 대한 답 역시 순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 날 후에 주의 천사가 아담에게 나타나 이르되, 어찌하여 너는 주께 희생을 드리느냐? 한즉, 아담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하노라.” (모세서 5:6)
아담과 이브는 정확한 의미도 알지 못한 채로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주께 희생을 드렸습니다. 천사가 묻습니다. 너는 왜 순종하느냐? 그 이유가 있느냐? 그 때 말하지요. “나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 외에는 알지 못하노라”고 말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당시 아담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순종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선악과를 따먹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타락한 이후에 비록 그들은 하나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위해 구속주가 마련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감격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안 성인들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의 일부만을 알았지만 그분이 명하신 것비록 명하신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기꺼이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죠? 천사가 나타나 그 희생의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5장 9절에 아버지와 아들에 대하여 증거하는 성신이 아담에게 내려와서 속죄에 대한 더 많은 빛과 지식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 아담과 이브는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더 큰 비밀을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순종과 계시의 원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 7:17)
비록 이해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기꺼이 순종했을 때 그 명령이 하나님께로 온 것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빛과 진리를 얻게 될 것이며 그분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순종합시오. 우리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나의 판단과 맞지 않더라도 일단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자는 마음에서라도 순종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더 잘 알게 될 것이며 더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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