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하나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다>

모로나이 2021. 2. 7. 23:32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다>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1토론의 첫 문구가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선언입니다. 요즘같이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비웃음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이라는 것이 어디 있어? 하나님이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도 없이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그것은 사람들이 만든 허구의 신화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 잠시나마 무신론적인 생각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버트란트 러셀, 리처드 도킨스나 샘 해리스의 책들을 읽고 나름 우쭐해 하면서 신이란 나약한 존재가 의지하기 위해 만든 망상일 뿐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생명의 기원은 과연 우연의 반복적인 과정의 소산인가라는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죠.

 

엠마누엘 칸트

독일의 철학자 칸트에 의하면 거듭 생각할수록, 그리고 그 생각이 점점 깊어질수록 마음을 채우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거듭될수록, 또 길어질수록 점점 더 새롭고 더욱 세찬 감탄과 숭배와 존경심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내 위에서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임마누엘 칸트)

 

물론 칸트는 인격적인 신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밤 하늘에 빛나는 하늘과, 마음 속에 있는 도덕률(혹은 양심)이 감탄과, 숭배, 존경심으로 마음을 채운다고 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비록 별로 가득 찬 밤 하늘을 볼 수는 없지만 하늘을 보면 볼수록, 그리고 그 우주의 광활함과 그 우주 속에 한 점에 불과한 지구에 존재하는 그 숨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과연 이 모든 것들이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단지 하나의 점이 우연과 우연을 반복해서, 현재와 같은 아름답고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생명체를 탄생시켰는가 였습니다.

 

과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여러 책들을 읽어 보면 우주는 마치 우리 인류의 도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즉 인간이 탄생하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들을 미리 갖추어 놓은 것처럼 완벽한 수치로 무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를 학자들은 미세 조정(Fine-Tuning Argument)”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주에는 정확한 수치를 지닌 모두 15가지의 상수가 있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몇 조분의 일만 틀려도 우주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물질이 생길 수도, 은하계나 수많은 별들, 그리고 인간도 살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와 지구는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생명체나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칸트는 그 한가지로 마음 속에 있는 도덕률을 꼽았습니다. 모든 문화와 국가마다 나름대로의 법이 있고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치 수학의 법칙과도 같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도덕률이 각 사람의 마음 속에, 누군가에 의해 학습되지도 않았고, 본인의 이기적인 성품에도 어긋나는 절대적 개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신이란 인간이 만든 망상에 불과하고, 인간이란 그저 이기적인 유전자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것만 진화를 거듭해 온 존재라면 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함과, 때로는 자신의 생존과 무관한 일에 대해서도 의로운 일에 희생할 수 있게 만드는가 의심할 수 있습니다.

 

C.S 루이스도 칸트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창조주의 존재에 대해 두 가지 증거가 있는데 “하나는 그가 만든 우주이며 또 하나는 우리의 정신에 새긴 도덕률이다. ...이것은 내부 정보이므로...어떤 사람이 지은 집을 보기보다는 그의 말을 들어야 더 많이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우주보다는 도덕률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와 루이스가 지적했던 이 두 가지 사항은 결코 무신론적인 생각을 가지고서는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무신론자들의 주장들도 많이 보았지만 말로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 하지만 궁색한 변명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주 너머에 어떤 존재를 암시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증거는 없다고...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닌 어떤 목적을 갖고 존재해 왔으며 우주는 그 인간들이 살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 게다가 인간 각자에게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양심(도덕률)이 있다는 것. 솔직히 이것을 하나님이라는 인격적인 존재가 살아있다는 객관적인 증거라고 할 근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역사적으로 수 천 년에 걸쳐서 칸트가 감탄과 찬양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 밤 하늘의 별을 창조했으며, 인간들 각자에 도덕률을 심어 놓았다던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인간들 삶에 개입했으며 몇몇 사람들을 선택해서 내가 바로 그다!”라고 그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경험하고,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기록(성경)을 남겼는데 시대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르고 각기 개성이나 처한 환경이 다른 이들이 기록한 것들을 모아놓고 보면 마치 한 사람의 저자가 기록한 것처럼 통일되어 있고 일관성이 있으며, 그 가르침이나 기록된 예언과 성취가 온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3,4)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로마서 2:!4)

 

그런데 이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비단 이스라엘에만 국한하지 아니하고 그 반대편 고대 미대륙에서도 사람들을 불러서 당신을 증거하고 기록(몰몬경)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앨마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표적을 충분히 가졌거늘, 네가 네 하나님을 시험하려느냐? 네게 이 모든 네 형제들과 또한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증거가 있거늘, 네가 말하기를 내게 표적을 보이라 하려느냐? 경전이 네 앞에 놓여 있고, 또한 만물이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내나니, 참으로 지구와 그 위에 있는 모든 것과 또한 그것의 움직임과 또한 규칙적인 형태로 움직이는 모든 행성도, 지고하신 창조자가 계심을 증거하느니라.” (앨마서 30:44)

 

“이는 보라,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선악을 분별하게 하였은즉,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판단하는 길을 보여 주노니, 무릇 선을 행하도록 권유하며, 권하여 그리스도를 믿도록 설득하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사로 말미암아 보냄을 받은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을 완전한 지식으로 알지니라.” (모로나이 7:16)

 

 

, 그거야 수 천 년 전 살던 사람들의 기록이라 전설일 가능성이 많고, 우리가 그것을 신뢰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조셉 스미스라는 사람에게 나타나 당신이 살아 있는 분임을 증거하셨습니다.

 

“나는 내 머리 바로 위에 해보다도 더 밝은 빛기둥을 보았으며, 그 빛기둥은 점차 내려와 이윽고 내게 임하였다. 그 빛기둥이 나타나자마자 나는 나를 결박했던 원수에게서 풀려났음을 깨달았다. 그 빛이 내 위에 머물렀을 때 나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광채와 영광을 지닌 두 분이 내 위, 공중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 중 한 분이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데, 다른 한 분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 하셨다” (조셉 스미스 역사 1:16,17)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하여 드린 많은 간증 다음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에 대하여 드리는 간증은 이러하니, 곧 그는 살아 계시다는 것이니라.” (교성 76:22)

 

조셉 스미스 뿐만 아니라 그 외 지금까지 그분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그럼 이렇게 주장할 분이 계시겠죠?

 

그건 그 사람들이고 내가 직접 보거나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미리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성신을 통한 개인적인 깨우침입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홀로 남겨진 이들을 위해서 진리의 성령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것의 참됨을 알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한복음 15:26)

“또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는 모든 것의 참됨을 알게 되리라” (모로나이서 10:4)

 

그렇기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정황상으로 알 것 같아도, 여러 증인들의 증언과 그 기록들이 남겨져 있다 하더라도 정작 나 자신은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신을 통해 알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성신으로 충만함을 입을 것”(3니파이 12:6)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약속에 대해 직접 시험해 보지도 않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물리적인 증거가 없으면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여러 방법들을 제시해 주셨고 실제 그런 약속을 시험해 봤을 때 그분을 체험하고 알게 된 많은 이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소금을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소금의 맛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일까요? 소금의 성분을 분석한 들, 소금의 짠 맛에 대한 다른 이들의 증언을 들었다 한들, 본인이 직접 먹어보지 않으면 소금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소금을 먹어보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사도행전 17:27)

 

하나님은 누군가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이들이 명확히 알 수 있도록 드러내시거나,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을 수 있게 나타나시지 않으시며 오히려 사람들이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끔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진실된 마음으로 더듬고, 찾으면 분명 그분을 찾게 될 것이며 오히려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계시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그분에게 나아와 성신을 통해 진리를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저는 직접 그대로 해보았으며, 정말 그분이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성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진실로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로마서 8: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