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첫번째 시현

한 반몰몬인이 올린 글에 대한 답변...

모로나이 2007. 6. 1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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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께서 작성해 주신 장문의 글은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만 저를 지칭하여 골수 몰몬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사실 골수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골수 몰몬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배교자들의 글을 읽거나 이를 근거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겠지요. 다만 저는 예전에 했던것과 마찬가지로 과연 무엇이 사실인지를 부단히 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형제님의 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이유도, 단순히 형제님과 어줍쟎은 토론을 하기 보다는 반대자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더욱 들어보고 싶은 호기심과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를 파악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또한 제가 올린 글 중에 일부가 이미 폐기처분 된 변증학자들의 주장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량을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지금 면밀하게 비교해 가면서 공부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니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결정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분명히...저는 변증론자들의 글이나 님이 줄기차게 인용하시는 반몰몬 글들에 대해서 비교하며 읽고 있다는 겁니다. 님이 올리신 글들은 다만 그러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밝혀 드립니다. 사실 님의 글에 대해 뭐 충격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제 자신이 세뇌가 되어버렸거나 아니면 님의 논리 역시 몇가지 오류들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건전한 의심으로 지칭되는 방법론적 의심, 그리고 불건전한 의심으로 지칭되는 병적인 의심이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경우 조금이라도 확실하지 않는 것은 모두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는데 아무리 의심하고 의심해도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 더욱 뚜렷해 졌구요. 그런데 이에서 더 발전하여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될 리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발견되고 신의 성실이라는 것을 근거로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절대자,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분을 저는 확실히 믿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회의적인 의심이라면 건전하고 인생을 보다 확고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의처증과 같이 무턱데고 의심부터 하는 병적인 의심의 경우라면 철저하게 배척합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몇 가지 변명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조셉 스미스의 이야기인데요...

 

조셉 스미스의 이야기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말 그대로 개인적인 것임을 밝혔습니다. 제 글을 보시면 개인적으로 조셉 스미스의 이야기가 황당하면서도 감동적인 것은이라고 표현해서 그것이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지 그것을 믿고 싶어서 믿으려 하거나 그러한 개인적인 감정들을 조셉 스미스의 시현을 다른 영적인 현상과 구분 짓는 특징으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침례 받은 이후에도 조셉 스미스의 이야기는 감동적일 뿐, 그것이 실제 사건인지에 대해선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 이후에

 

 

그 사건 이후로 벌어진 엄청난 일들은, 이 사건이 단순히 조셉에 의해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라고 기록했던 것처럼 그 사건이 후대에 조작된 조셉 스미스의 동화였다면 과연 이런 위대한. 거대한 일들(이 부분에 대해선 님께서 나중에 알려주시겠다고 하시는데요..그 때 이야기 하지요.) 이 일어났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님은 마치 제가 제 개인적 경험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다라고 이야기 한 것처럼 오도를 하시는데요.... 마치 님은 심리학자라도 되는 듯이, 그리고 제 마음의 의도와 생각을 훤히 읽을 수 있다는 듯이 나름대로의 분석을 해주셨는데 솔직히 제게 있어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점쟁이의 말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감동에 대해서 말인데요. 오해를 하지 마시기를 바라며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 입양된 사람이 성장하여 한국을 방문할 때에 이곳이 우리 나라구나하는 감격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는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그러한 느낌을 받지 않지요. 물론 허구가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실제 사실이 더욱 큰 감동을 주는 겁니다. 감동이라고 하여 무조건 허구에 기초를 둔 감정에만 치우치지 마시고 사실이 주는 감동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거짓인지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판(님이야 결론을 내리셨겠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결론까지 일방적으로 내려주시면 곤란하죠.) 에 무턱데고 거짓에 기초를 둔 감정이며 그것은 어떤 학자가 말한 유형에 해당한다면서 비아냥 거리는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님이 올리신 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없다라고 성급하게 이야기 하는 것보다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욱 솔직한 표현이란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지식이 그 어느 누구의 것보다 뛰어나며 자신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방의 모른다는 표현이 무식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발견하지 못해서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쉬울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이 발견해서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사실에 가깝습니다.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했어도 내가 발견하기만 했다고 하면 나는 있다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조셉 스미스의 이야기가 몇 가지 차이가 있고 그것을 전해 온 사람들의 해석이 가미되어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 특별한 사건은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록의 차이와 역사적 기록의 불완전함을 근거로 없다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님은 몇몇 학자들의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그것이 교회가 소장하고 억압해 온 자료들이라는 전제를 장황하게 깔아서 귄위를 부여한 뒤에 없다라는 결론을 떡 하니 내려놓고 있습니다. 그야 말로 의도 확대의 오류지요. 학자들이 조사하고 모아 둔 자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하지는 않고 오히려 그 의도를 조셉의 경험은 거짓이다.”라고 확대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양한 자료들은 그야말로 그것을 기록한 자들의 주관이 담겨 있고, 그것이 기록된 배경이나 저자의 의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사리 정의내릴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님은 그 의도를 불순한 방향으로 확대해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기록들이 기록된 관점의 차이라고 말을 했지만 님은 그것이 거짓의 증거라고 하는 것이지요. 역사에 대한 해석이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라고 한 것은 이미 역사학자들 내에서 내려오는 상식임에도 그러한 진행형의 역사 해석에 대해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무식이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남을 무식하다고 하는 자체에 이미 자신은 유식하다는 자신만만함을 내포하고 있는데...그러한 유아기적인 만족감. 그냥 웃고 넘어가야겠죠???

 

그리고 1820년대 미국 사회가 이미 문명화 되었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들이 빠짐없이 기록되고 보고되고 출판되는 사회라고 하시는데....물론 이천년전의 팔레스타인과 비교하여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문명과 출판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과연 님의 확신하는 것처럼 빠짐없이 기록되고 보고되고 출판되는 사회라는 말은 정확한 것일까요? 그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된 오늘날에도 모든 역사가 빠짐없이 기록되고 보고된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200년 전의 기록은요. 민권운동가이자 민중사학자인 레이 라파엘은 미국의 건국사가 매끈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는 이유는 선과 악의 대결영웅주의라는 뼈대 위에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진 발명된 과거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에게 남겨진 여러 가지 역사 기록을 보면 그것은 단순히 빠짐없이 기록되고 보고되는 객관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특정 이념이나 국가에 대한 합리화,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의 창조 등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록만 남겨져 있다고 그것을 100% 객관적인 것으로 믿을 것도 아니며 기록에 남겨져 있지 않는다 하여 허구의 것으로 정의 내리는 것도, 역사를 이해하는 사고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조셉 스미스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들. 그것이 과연 객관적인지에 대해서도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논의할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부분을 역사적인 기록에 근거로 두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역사를 믿는 신앙이 없다고 이야기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교회에서 인정한 역사든 감추고 은폐하려 했던 역사든, 그것은 어떤 것도 사실이나 거짓으로 100% 증명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신앙의 근거로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특정 역사나 그에 대한 해석을 객관적인 것으로 전적인 신뢰를 두는 것. 그것도 또 다른 의미의 신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인들은 자신의 그러한 믿음을 신앙이 아닌 철저히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절대시하면서 그렇지 않은 다른 해석은 거짓으로 매도하는, 그야말로 입맛에 편한 것들만 취사선택을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제가 인용하는 변증론자들의 글들은 이미 폐기처분된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일 뿐이며 님이 인용하시는 학자들의 말들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몰몬 학자의 주장일 경우 솔직한 인정이라며 나름대로의 권위도 부여하지요.

 

그리고 루시 맥 스미스의 편지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됩니다. 한 개인의 편지나 일지와 같은 것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특정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 전적인 신뢰를 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어떤 배경에서 이해를 하고 있는지,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이해를 하고 있는지 현대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추정만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제가 편지의 전문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들어가 있는 요점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루시의 편지를 보면 모로나이 천사의 방문과 첫 번째 시현의 내용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보고 보통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님이 신봉하시는 고로 이것은 거짓이다!”이며 두 번째는 그녀가 두 가지 사건을 착각한 것이다.”입니다. 분명히 특별한 경험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그녀가 그것을 서술하는 과정 속에서 한가지로 착각을 한 겁니다. 쉽게 말해서 님은 A라는 사람의 전기를 읽을 때에 위인전에 있는 주관적인 표현 정도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근원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와 같다는 겁니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묘사함에 있어서 시도된 주관적 표현들에 불일치가 발견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셉 스미스 이야기에 대한 기록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 자체가 그 사건의 조작이나 창작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도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조셉 스미스의 가족이 다른 교회에 참석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님이 이미 언급하신 것처럼 조셉 스미스가 그러한 명령을 받았지 그의 가족들이 처음부터 조셉의 말에 따라 모든 교회 활동을 그만 두었다고 보는 것은 님이 비판할 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온 전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4명의 선교사들이 조셉 스미스의 시현을 선포했다는 내용은 변증 사이트에서 인용한 것이고 그 출처도 인용해 두었습니다. (The Reflector, vol. 2, no. 13 (14 February 1831) [Palmyra, New York]). 물론 제가 그것을 검증하진 않은 것은 분명이나 그렇다고 사실과 무관한 내용을 조작해서 올렸다고 보진 않습니다. The Reflector의 내용은

 http://www.sidneyrigdon.com/dbroadhu/NY/wayn1830.htm

에서 볼 수 있으며

http://www.jefflindsay.com/LDSFAQ/FQ_first_vision.shtml

를 비롯한 몇몇 변증 사이트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조셉 스미스 1세의 아버지가 준 축복 내용도 그렇습니다. 님은 단순히 1832년의 기록을 언급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근거가 없지 않나요? 님은 언젠가 1838년까지 조셉 스미스의 경험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주장을 하시나 이제 축복사의 내용을 언급하자 초기의 기록을 언급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해주십시오.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첨가한 것입니까 아니면 원래 그러한 기록이 있는데 조셉 스미스 1세가 1832년 기록을 단순히 언급한 것입니까?

 

조셉이 그의 경험을 나누지 않은 것과 바울처럼 굴하지 않겠다는 조셉의 말은 서로 관련이 없습니다. 잘 보십시오. 조셉은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조셉 스미스가 본 그 특별한 사건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말은 아니지요. 어디 조셉이 내가 본 것은 거짓이었다.”고 부정한 적이 있었던지요?? 특정 문장을 해석하는 데에도 이렇게 개인의 편견이 다분히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또 제가 사용한 예를 근거로 조셉 스미스가 사물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장님임을 인정했다며 잘못된 유추며 의도 확대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도한 것이 조셉이 장님이라는 말이었습니까? 제한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비유함에 있어 장님이라 표현한 것이지 그것을 사물을 제대로 못 보는 장님이란 의미인가요?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님의 자유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오류에 빠져 있으며 나는 객관적, 너는 억지 부리기라고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그리고 조셉 스미스의 이야기를 비교해서 서술해 주셨는데....그것을 모순이라 보실 지 모르나 충분히 일치시켜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1. 숲에 들어가 기도하기 전에 세상의 모든 교회가 타락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832년 이야기); 어느 교회가 옳은 교회인지 몰라 하나님에게 묻고 싶었다. (1838년 이야기)

 

2. 기도하던 때의 나이가 16살이었다 (1832년 이야기), 기도하던 때의 나이가 14살이었다 (1838년 이야기)

 

3.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기도하러 들어갔다 (1832년 이야기); 참된 교회를 찾기위해 기도하러 들어갔다 (1838년 이야기)

 

4. 주님만 나타난다 (1832년 이야기);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별개의 존재로 나타난다 (1838년 이야기)

 

5. “너의 죄가 사함받았느니라” (1832년 이야기); 세상의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므로 어느 교회에도 가입하지 말라 (1838년 이야기)

 

조셉은 어린 시절에 많은 종교적인 갈등을 보게 되었고 성경에 호소하여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에 참석하지만 전부 그의 의문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고 결국 이 지상에 참된 교회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분명 그분의 유일한 교회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참된 교회가 없다고 쉽사리 결정내린 미숙함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어리숙함을 용서받기 위해, 그리고 자기가 나가야 할 길과 참된 교회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가 14살이었는지 16살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 때 하나님과 예수님이 나타나시는데 하나님이 아들을 소개한 이후 침묵을 지키시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인 지시를 주십니다. 그래서 조셉은 주님이 나타나셨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게 억지입니까? 님은 이 사건이 몰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에 100% 정확해야 한다고 하며 그것이 일개 제 침례와 비교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실제 그러한 경험은 교회사에서 있어 중요한 것인 동시에 조셉 스미스의 개인적인 경험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진리를 찾기 위해 방황하고 기도하며 연구한 적이 있으며 그것을 글로 남겨서 몇몇 사람들에게 전했는데 기록마다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더군요. 참된 종교를 찾기 위해 기도하지만 실제 그 내용 속에서 죄 사함이나 자기가 나가야 할 바에 대한 모든 간구가 포함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진지한 경험을 말로나 혹은 글로 남겨본 사람이라면 그 경험에 대한 기록이 참으로 진실하고 인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라고 말하실지 모르나 경험해 본 것과 그것을 논리로 설명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님이 어떻게 몰몬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그것이 님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갈등과 과정을 100% 완벽하게 기술한 것입니까? 수개월에 걸친 연구와 그 때마다 일어난 충격과 실망, 감정의 기복, 그리고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의 모든 과정 들이 완벽한 기승전결의 형태를 갖추어 기록되었나요?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이야기한 것인데 그것이 비단 성경이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역사나 전기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 외에 것들은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저도 사이트를 찾아봐야 하겠고 님이 올리신 내용들과 비교를 해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님의 글들을 흥미있게 보고 있으며 나름대로 감탄도 하면서도 무지에의 호소라는 특정 오류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어떤 주장이 반증되지 못함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오류인데 특별히 이러한 오류는 종교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다룰 때 쉽게 발생합니다. 또한 흑백논리의 오류에도 빠져 있지요. 이게 아니면 저거랍니다. 조셉 스미스의 시현에 대한 기록이 불완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이라는 것이지요. 그 외에 다른 해석들은 전부 억지라 합니다. 또 사람에의 추론(인신공격)이 있습니다. 몰몬 회원들을 가차없이 깍아 내리고 그들이 보여준 몇 가지 일들을 근거로 그들의 주장이 잘못이라고 합니다. 원천봉쇄의 오류도 발견되네요. “이것을 설명 못하면 너의 주장은 거짓이다.”라고 합니다. 반론이 일어날 수 있는 원천(변증 사이트)을 비판함으로써 반론의 제기를 불가능하게 하여 자신의 논지를 옹호하는 오류지요. (다 지금은 폐기된 변명일 뿐이다.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