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따끔한 일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은 반드시 장려되어야 한다.

모로나이 2008. 4. 26. 15:09

내가 가장 싫어하면서 걱정스럽기도 하고, 또한 우려할 만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너무나도 빈번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그 어떠한 질문에 간증 하나만으로 묵살하려는 태도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구도자나 회원이 교회 교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정직한 의도를 가지면서 질문했다고 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판을 위해, 혹은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진실로 알고 싶어하는 정직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경전에 아무리 해박하다고 하여도 모르는 내용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질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기 개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몰몬경이 참됨을 간증한다면 과연 그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이다. 미분적분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엉뚱하게도 관계대명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짜피 이 두 개는 시험에 나오는 것이니까…”라며 무리하게 연결하려는 것이 질문자를 만족시킬 대답이 될까?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정말 진지하게 이런 저러한 질문을 가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참으로 고군분투하였다. 그러다가 경전에 해박한 어떤 분을 찾아가 그 질문에 대해 털어놓았고, 100% 만족스럽진 않을지 모르나 어느 정도 해답을 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분은 속으로 엄청나게 화를 많이 냈다고 했다. 왜냐고? 질문을 받은 분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본인의 개종 이야기를 하면서 이 복음이 참되다는 간증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간증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질문자가 특정한 것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어렵게 고백했는데 그와 전혀 맞지 않는 몰몬경에 대한 간증을 했다는 것이다. 아마 그분의 의도는 몰몬경이 참되기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한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이고, 그가 선지자라면 이 교회의 모든 가르침은 100% 완벽하다그러니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고 믿음을 가지라뭐 이런 것이었을꺼다. 하지만 등이 간지러운 사람의 다리를 아무리 긁어주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그 문제의 핵심을 바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정직한 의문을 가진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또한 무슨 의문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적으로 혼란이 찾아오게 되면 기도하지 않고 경전 읽지 않았기 때문에혹은 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문제의 원인을 성급하게 몇 가지로 요약하여 진단을 내려 버린다. 물론 그것이 원인이 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배가 아파 찾아간 환자에게 무조건 감기가 그 원인이니 감기약을 먹으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돌팔이 의사이다. 무엇이 원인인지 정확하고 명확하게 진단하여 치료를 하는 것이 의사라면 마땅히 해야 할 바다. 예전의 어느 선교사는 오랫동안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했지만 구도자들을 침례의 물가로 인도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원인을 무조건 그 선교사에게 돌리며 어떤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았다거나 동반자 관계가 좋지 않다..는 식으로 찾으려고만 했다는 것이다. 그 선교사는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가 없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처방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몇 가지로만 단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정직한 의문에 대해 터부시하거나 주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질병의 하나로만 봐왔던 것 같다. 무조건 기도하고 경전 읽으면 방법을 찾게 된다는 식의, 어찌 보면 맞지만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성의 없는 답변만을 해왔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성의 없는 태도로 인해 많은 분들이 교회에 만족스럽지 못해 저활동이 되거나 아에 교회를 떠난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난 정말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의문을 갖는다는 것이 심각한 일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의 하나로 인식하는 분위기에 속해있고 싶다. 물론 우리는 다툼을 일으키는 어리석고 무익한 변론(딤후 2:23)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진리로 무장한 가운데 변론했던 (사도 17:17) 용기를 가지고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이사야 1:18)는 주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할 수 있는 그러한 후기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 전서 3:15)

 

진실로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성도들이라면 우리가 가진 소망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온유와 두려움을 가지고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신권을 가진 형제들이라면 마땅히 경고하고 해설하며 권면하여 가르치며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도록 권유 (교성 20:59)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저 신권은 때 되면 받는, 침례 받은 지 얼마 안된 형제라면 가능한 빨리 받아야 하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각 와드에 신권 소유자의 수를 높이기 위한 정책은 아닐까??? (뭐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넘어가자)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해결할 수 없어 갈등하다 교회와 멀어진 이들을 보면 그렇고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회원들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난 정말 '정직한 의문'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너무 부족하다....노력하기에는 내 능력에 한계가 너무 많다...

 

그런 분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진정한 선지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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