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사선님께..
일단 제 개인 블로그에 관심을 보여주시고, 무엇보다도 진실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보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후기성도로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저 역시 회의주의자이며 영원한 구도자요, 또한 진실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물론 이 블로그에 올라오는 자료들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지 못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님께서 지난 세월 동안 후기성도교회에 대해 접하시면서 느끼셨을 것들이 불만이셨을 수도 있습니다. 님이 어떤 결론을 내리셨든지 간에 그것이 진실을 추구하는 양심에 근거를 둔 것이기를 소망하며제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1. 예수의 불제자설.
제가 인용한 조셉 스미스 영감역의 구절은 님의 말씀, 즉 “귀하의 교회에서도 "예수그리스도" 성전에서 영감을 받아 기록했다는 그 책에조차 없습니다”라고 하신 것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희 교회에서 영감받아 기록했다는 책에는 분명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 구절에 대한 진의 여부를 논하지는 않았으며 단지 인용했을 뿐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선 많은 이론들이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6월 29일) 서울 방송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재조명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 그 내용의 핵심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고대 신화의 조작품’이라는 것이었죠. 고대 오시리스 신화와 디오니소스 신화에서 발전하여 예수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뭐 성경이나 고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그러한 주장에 혹할 수는 있겠더군요. 그러나 분명 그들은 많은 역사적 자료들과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만약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예수 불제자설 자체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성서”(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보면 정경화 과정에서 빠져 사라질 뻔 했던 고대 문헌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 일부는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뭐 어린 시절부터 기이한 능력을 발휘하고, 때로는 잔인한 모습까지 보여주는 등, 비교적 놀랄만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글에서는 예수 불제자설이 들어설 여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예수 불제자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제시된 것들 여럿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위에 두 학설과 같이 이론적으로는 탄탄할지는 몰라도 역사적 사실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불멸의 신과 같은 것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무신론적 사상입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사람을 도울 수 있거나 도우려 하는 신들은 전혀 없다.”“ 설사 신이 있다 해도 신이 나의 일상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있죠.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이 받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제자들에게 널리 전하였으며 또한 그가 전하는 가르침들은 무신론적 부처님에게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요한 7:16)이라 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임을 천명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이 부처님에게서 가르침 받은 것을 마치 하나님에서 받은 것처럼 전하였다면 그는 필시 사기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흐르는 것들, 그리고 몰몬경을 비롯한 현대의 계시를 통해서 전해 받은 것들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예수님은 단순한 상상물이거나 부처님의 제자가 아닌, 세상의 구세주로서 부활하신 만인의 구주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담긴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그분의 인격과 가르침, 그분의 영향력들을 면밀하게 고려했을 적에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성역을 위해 준비했다는 조셉스미스역 성경의 내용이 오히려 전체적으로 보아 자연스럽고 이치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인도설을 들먹어지 않는다 해도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0,11)의 예언처럼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념의 출현이 예수의 이름 하에 출현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습니다.
2. DNA에 대해
저는 전문가도 아니며 이 부분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기 때문에 명확하게 답변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 민족의 근원을 알기 위해 현대 인종의 유전적 특징을 근거로 삼아 분석하는 것을 정확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몰몬경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사실 리하이와 그의 가족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므낫세 지파
에 속하며 (앨마서 10:3, 니전 5:14) 에브라힘 지파였던 이스마엘 가족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조셉 스미
스는 116페이지의 분실된 원고였던 리하이서에서 이스마엘 가족이 에브라힘 지파였고 결국 이 두 지파의
결혼은 창세기 48장에서 에브라힘과 므낫세에게 주어진 야곱의 말이 성취된 것이라 하였다.-Journal of
Discourses, Vol. 23 (London: Latter-day Saint's Book Depot, 1883), 184) 이 지파들은 과거 아시리아
인에 의해 끌려가 현재 중동 지방의 유전적 결합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게다가 중동 지역은 세 대
륙의 교차지역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주와 결합, 그리고 타민족간의 결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다. 그
렇기 때문에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힘 지파의 DNA를 파악하기 위해서 (2600년 이후의) 현대 중동지역
DNA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말 엉터리 과학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봐도 폴리네시아인의 DNA를 근거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
다. 그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일반 대만인과는 달리 혼혈인입니다. 다시 말해 과거 어느 순간에 타민족과
의 결혼과 이주가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이죠. 엄밀한 의미에서의 순수한 혈통을 수천년 그대로 유지하
는 민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어찌 폴리네시아인이 수 만 년 전 이주한 대만인들의 순수한 혈통을
받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폴리네시아인들에게 헤이고드의 후손이며 레이맨인의 후손이라고 이야기한 것
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은 안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회 지도자들의 레이맨인들에 대한 관심은 유전
적, 혈통적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입다. 그가 말한 레이맨인들은 실제 인디언이기도 했지만 다른 종족과
피가 섞인 인디언도 포함되며 인디언 종족의 한 부분으로 입양된, 영적인 의미에서도 레이맨인을 이해하
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몰몬경에서는 성약의 백성으로서 레이맨인 후손들에 대한 풍부한 약속이 기록되
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눈에는 모든 미국 원주민들(혹은 폴리네시아인들)이 성약의 백성으로서
약속된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들을 혈통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상관 없
이 “레이맨인”이라고 지칭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의 유전적 특성과는 무관한 내용들이지요.
3. 믿음 체계에 대해..
님께서는 교회를 지칭하시면서 “어떤 강력한 계명체제 그로인한 서로간에 이해못할 장벽을 만드는 구조,
그리고 절대적인 지도자에 대한 신봉으로 인한 진리탐구나 세상적인 정신적 판단 결여, 귀하의 교회 사람들의 특징이 제가 보기엔 거의 남의 이론이나 귀하의 종교지도자들이 얘기한걸 가지고 참되다 얘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언제 어떻게 접해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님이 겉으로 본 것을 님의 기존 생각과 결합하여 결론을 내린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과 사랑, 그리고 회개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교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선교사업의 목적도 바로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희망이 있으며 소망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교회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며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를 이해 못할 장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 14:15)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지도자들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하는 종들이며 우리처럼 불완전하여 실수를 저지르는 평범한 인간들일 뿐입니다. 다만 그러한 자들을 주님께서 들어 쓰시는 도구인 것이지요. 그들은 우리의 신봉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이 도구이기 때문에 그들을 사용하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지요. 그렇기에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는 가르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한 10:40)
주님은 그 종을 받아들이는 자가 곧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종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그 인간들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그들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시는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4. 아브라함서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이 있지만 간단하게만 언급하겠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아브라함서의 일부로 알려진 문헌은, 말 그대로 장례식 문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문헌은 조셉이 번역할 때 사용한 원본 문서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례식 문서를 가지고 “이것보면 조셉이 번역한 것과는 다르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원본 자체가 분실되고 없는데 어떻게 원본과 조셉 스미스의 번역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간단하게나마 님이 제기하신 문제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사실 이러한 논의 자체가 무슨 도움이 될까 고민해 보기도 했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텐데 하고 말이지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에 따라 살기에도 바쁜데 이런 저런 논쟁으로 분쟁을 야기하는 것들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물론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발생하는 진지한 의문들에 대해서는 바람직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러한 진실된 마음으로 진실을 추구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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