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토론내용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나..토론 중 일부

모로나이 2008. 9. 13. 21:04

******************************************************************************

님의 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일단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고 그에 대한 답변을 달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셨을 것이며 시간을 내어 글로 옮기는 작업은 시간과 힘을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서로 애쓴 결과대로 저희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알며 그분을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님의 지적처럼 한가지 토론을 주제로 3,4번 글을 주고 받다보면 동일한 내용이 표현만 달리하여 반복되어 읽는 사람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조차 피곤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동일한 성구를 가지고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가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주석의 문제를 든 것은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석에는 한 가지 성구를 해석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들을 다 담았기 때문에 여러 해석들이 등장하고는 있고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이 좀 더 객관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기회가 되기는 하겠으나 실제 그것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과 맞는 것만 선택하여 그것을 마치 유일한 근거인양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예를 지금 저희가 논의하고 있는 시편 82편을 두고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님께서는 시편 82편에 대해 주석 중 특정 해석만 올리시고는 그것이 마치 정설인 것인 양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님의 해석은 19세기 보수 개신교회를 중심으로 나온 것으로 현재 많은 교단에서는 그와 같은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로서 4가지 정도가 나오는데 간단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일단 가톨릭 교회의 표준 해석에 의하면 "obviously, the 'gods' cannot be human judges for their punishment is to die 'like men.'"라고 해서 7절에 나온 사람처럼 죽는다는 표현을 들어 “신들”이 인간 판사를 의미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JBC, 1:591 [35:98].) 또한 영국 캠브리지 틴데일 하우스의 보수 교단 데렉 키드너 목사의 경우도 “사람처럼 죽으며”라는 표현이 “신들”이 인간 판사를 의미하는데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Derek Kidner, Psalms 73–150: A Commentary on Books III, IV, and V of the Psalms (London: Inter-Varsity, 1975)) 자 이러한 학자들의 의견을 염두에 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심판을 잘못한 것에 대한 형벌로서 “사람처럼 죽는” 형벌이 주어졌다 하였습니다. 님은 “신이 어떻게 죽느냐?”는 단 한마디의 말로 이 문제점을 그냥 넘어가려고 하시는데 애초에 그들이 사람 판사들이었다면 “사람처럼 죽는 형벌”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신학자 Smick에 의하면 “그들이 사람처럼 죽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면 결국 그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고 했습니다.(Elmer Smick, "Mythopoetic Language in the Psalms,"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44 (1982): 95) 죽지 않는 영적인 존재들이라 하여도 하나님에 의해 죽을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십니까?? 또한 그들을 일러 “지존자의 아들들”(sons of the Most High--bene elyon)라고 하였는데 불의한 판사들의 직위에 그처럼 고귀한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문맥상 이해되지도, 지지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시편 82편의 엘로힘(ʾĕlōhîm)을 단순히 인간 판사로 해석하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흠정역 성경에서 “판사”"(judges)"로 번역된 출 21:6, 22:8,9을 지적하고 그것을 근거로 삼고는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해야 할 마땅한 근거가 없이 그저 번역의 선호 차원에서 진행할 것 뿐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모세가 엘로힘으로 불렸을 때에 그것은 단지 모세에게 주어진 직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행하고 있는 역할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실제 파라오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성임된 인간 판사의 개념 그 이상으로 하나님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엘로힘이 사용된 것입니다.

그럼 시편 82편의 ĕlōhîm이란 단어를 다른 성경에서는 어떻게 번역하고 있을까요? 고대 라틴 불가타 역에서는 deos, 즉 신이라 번역하고 있으며 그리스어 70인 역에서도 theos(신)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달리 ‘판사’라고 명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고대 성경들은 분명하게 신적인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마린 루터의 1545년판 번역본에도 Götter (신들)(Martin Luther, Die gantze Heilige Schrifft Deudsch [1545], ed. Hans Volz) , 표준 유대인판 성경에도 “신”으로 번역하고 있죠.

또 다른 문제점이 제기됩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주장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에 예수께서 사용하신 논거가 단지 인간 판사들이 신이나 신의 아들로 불렸다는 구절을 사용한 것이었다고 하면 엄청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장난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실제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습을 증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단지 인간판사에게 주어지는 칭호를 근거로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하신 것일까요?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사용하신 구절을 “인간 판사”로 이해하고 있었다면(물론 그들은 그 구절의 의미를 분명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을 향하여 신성모독의 이유로 돌을 던지지는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저 보이시는지요. 동일한 성구를 학자들마다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느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으며 성경의 흐름과 일치하는지는 토론을 진행하는 저희가 임의적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제 3자가 선택할 몫이겠지요. 그러나 제가 너무나도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주석 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칭 정통 교단임을 주장하는 이들도 성경 해석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견을 보이고 있으며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들도 구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성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다르다 하여 이단이니 사이비니 서로를 정죄하기에 바쁜 모습을 너무나도 격렬하게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작 본인들도 편중된 해석에 치중하여 그와 다른 것들을 전부 이단시 하는 영적 사형 선고를 빈번하게 내리면서도 그들에게 해당되는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볼까요? 베드로 후서의 “신성한 성품”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후기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가 신성한 존재가 되고 나중에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합니다. 이 “신과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상당히 어색하고 귀에 거슬리시는 것 같은데 사실 “표현상의 차이”일 뿐 일반 개신교회에서 말하는 개념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님은 신성한 성품을 성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왕자와 거지의 예까지 드셨는데 사실 후기성도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님이 사용하신 예를 더 추가하자면 이렇습니다. 자 거지가 돌아다니다가 왕이 그를 아들로 삼아서 왕자로 했다고 합니다. 뭐 거지 근성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익숙해 지고 훈련을 받으면서 점점 왕자의 모습으로 닮아가지요. 자 님은 여기까지 예를 드셨지만 한 발자국 더 나가보겠습니다. 그 왕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평생 왕자로 살다가 죽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성장하여 결국에 왕이 됩니다. (벧전 2:9) 자 님에게 아들이 있을 경우 그 아들이 성장하여 뭐가 됩니까? 평생 어린 아이로 살지 않죠? 성장하고 결혼하여 님과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기성도가 말하는 신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가 된다고 하여 실제 우리 아버지보다 높아지거나 그분의 권위를 가로채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처럼 된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거나 그분보다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며 영원무궁토록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신이란 영적 존재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으면 영적 존재가 되며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천사들까지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롬 8:14-18) 이런 상태를 신이라 부른다 하여 그것이 신성 모독이며 성경의 가르침과 대치되는 것인가요??? 사실 신이 된다는 개념 자체에 상당히 못마땅해 하시고 이단의 주장이며 몰몬이 기독교가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처럼 제시하는 것은 성경을 너무 편향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님께서 몇가지 오해하신 것이 있어 잠시 언급합니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고전 8:5)

이 구절에 대해 반박하시면서 “이러한 전체내용은 배제한채 한구절 그것도 자의적 해석으로 하늘의 신이라 불리는 자를 "후기성도"라 주장하니 이거 답답하기만 합니다.”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하늘의 신이라 불리는 자가 후기성도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제 글을 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자들은 하늘에 속한 영적인 존재로서 신이나 주로서 불리는데 천사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영적 존재일 수 있습니다. 고전 8장 전체가 우상숭배에 대한 내용이지요? 우상숭배라 하니 형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들만 생각하시는가 본데 하나님 외에 다른 영적 존재, 즉 천사 숭배 자체도 우상숭배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골 2:18) 어떠한 영적 존재이든 땅에 속한 우상이건 우리의 숭배의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임을 강조한 구절임을 또한 기억하십시오.

또한 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때 최소한분이 함께 하셨다는것을 알수있다고요?성경전체를 이해하십시요..그러면 천지창조 당시에 하나님과 예수님과성령님께서 계셨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기초적 이해가 부족하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도 오해하셨습니다. 저는 “우리”라는 표현만을 근거로 하여 창조 사업에 한 분 이상이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인지 성령님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철저하게 부정하지만 세 분이 개체적인 분이나 목적과 뜻에 있어 온전한 일치를 누리고 있음은 저희 신앙개조 1항에서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성도가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조셉 스미스에 의해 만들어 낸 이단 교리가 아니라 초대 교부들 역시 주장했던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인용하죠.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폴리캅의 제자였던 이레네우스(Irenaeus)- 영지주의를 반박한 저서《이단반박》등의 저작들은 초대교회 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음-의 경우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신(gods)으로 창조되지 않고, 처음에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가 나중에야 신이 된다고 해서 그분(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순수한 자비로 이러한 과정을 채택하셔서 아무도 하나님이 인간을 차별하신다거나 인간에게 인색하시다고 불평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내가 말했노니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 모두는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라"고 선포하신다. ...왜냐하면 먼저는 필멸의 특성이 보여지고 다음에는 필멸의 것이 정복되어 불멸가운데 삼키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Henry Bettenson, The Early Christian Fathers: A Selection from the Writings of the Fathers from St. Clement of Rome to St. Athanasiu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6))

2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말하노니 여러분이 신이 되는 방법을 인간으로부터 배우도록 하기위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었습니다....만약 사람이 자신을 안다고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 하나님의 미는 참된 미다. 참된 미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신(gods)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인간은 신이 될 것이다.” (Clement of Alexandria, Clement of Alexandria, The Instructor, 3.1)

4세기 초기에 자신의 이름을 따 지어진 아타나시우스 신경으로 유명한 아타나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 주님이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되었듯이 우리 인간도 그의 육체를 통해 신이 되어 영원한 삶을 상속받게 된다” (Athanasius, Against the Arians, 1.39, 3.39.)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의롭게 만드시는 그분 자신이 인간을 신으로 만드신다. 왜냐하면 인간을 의롭게 만들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때문이다. [요1:12].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도 역시 신이 된 것이다." (Augustine, on the Psalms, 50:2.)

이 외에도 오리겐, 순교자 저스틴, 히폴리투스, 제롬 등 초대 기독교를 정립했던 많은 교부들 역시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여러 차례 가르친 바가 있습니다. 님의 논리대로 한다면 이 모든 이들은 결국 이단자들이 되며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되지요.

또한 웹스터 기독교 신학 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부수적인 정보가 "신성화"(deification) 는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신이 되고자 하는 것(희랍어로 theosis)은 모든 기독교인의 목표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은혜로 신이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이 신성화 교리는 구약과 신약의 여러 성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 시82(81).6: 벧후1.4). 그리고 성 바울은 양부모가 양자를 입양할 대 사용하는 언어(cf. 롬8.9-17: 갈4.5-7)와 제 사복음서 (cf.17.21-23)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교리는 본질적으로 성 바울의 가르침이다.“

자 보셨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 주석에서도, 초대 교부의 증언을 통해서도, 또한 몇몇 기독교 사전에서도 성도가 신이 될 수 있다는 교리는 결코 이단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적인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으로 하자니까 왜 주석의 내용이나 교부들의 증언을 언급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님께서는 저를 일러 “역사적 배경과 앞뒤 문맥을 전혀 무시한 채 성경을 해석하는 분”이라 하셨고 그러한 자들을 위해 주석이 필요하다고 하셨기에 언급한 것뿐이니 오해하지 말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