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의 구원관은 이렇습니다. 기원 33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성령의 강림(사도행전 2장)부터 1935년 사이에 144000명이 선택되어 하늘에 올라가 왕으로 통치하며 그 외 충실한 사람들(구약 시대와 현재)은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하늘에 대한 소망은 전부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주장하며 현재는 지상 낙원에 대한 소망만 있기 때문에 증인 출판물에서는 줄곧 지상 낙원을 묘사하는 내용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교리는 상당히 많은 오류들을 담고 있고 있지만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모르는 사람의 경우 그들이 제기하는 여러 성구들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그 교리의 전반적인 면을 다루기 보다는 증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구들을 근거로 하여 성경과 현대의 계시는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증인 책자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제 14장 “누가 하늘로 가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부분을 참조하여 반박합니다.)
증인들은 이 장에서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사도
다윗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도행전
증인들은 전후 문맥과 상관없이 이 구절의 앞 부분만을 인용하여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 즉 그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는 내용으로 확대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의 구원 반열에 대한 소망이나 운명을 다룬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오른 쪽에 거하시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임에 유념해야 합니다. 즉 다윗은 직접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 우편에 계신 예수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주님께서 영감을 통하여 그 위대한 장면을 시현으로 보여주셨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직접 하늘로 올라가 그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시편 110편에서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 구절이 다윗의 구원 반열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실제 다윗이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다 하여도 후기의 계시와 어긋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후기의 경전에서 다윗의 운명은 순결의 법과 무죄한 죄의 피를 흘린 결과로 인하여 승영에서 떨어져 자기 몫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성 132:39)
욥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
이 구절에서 욥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는데 증인들은 이 부활에 대한 소망을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아닌 지상 낙원에서의 소망을 품은 것”이라 단정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부활에 대한 소망은 단순히 지상에서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신약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그리고 욥은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겠다는 소망을 표현했는데 이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다시 말해서 욥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즉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기대하였으며 이 부활은 바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일어날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이렇게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내 몸을 입고=흠정역) 하나님을 보리라” (욥기
욥에게는 육체 밖이건 몸을 입건 간에 부활하여 하나님을 직접 보리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단순히 지상 낙원에서 부활하는 소망을 품었다면 이런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지요.
침례 요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태
천국, 즉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침례 요한보다 크다는 구절이기 때문에 침례 요한은 하늘나라로 가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 되실 것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자가 없는데 단순히 시대를 잘못 만나 하늘로 가지 못하고 하늘에 가는 자들보다 작은 자로 통치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치적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이 구절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우리는 먼저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봐야 합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
예수님의 관점에서 가장 위대한 자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께서는 당신을 가장 낮은 자로서 낮추시고 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는 표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침례 요한이 아무리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크다고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지상낙원” 책자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예수님 이전에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브리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몇몇 구약의 선진들은 비록 그 당시에는 약속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더 나은 본향, 즉 하늘에 있는 것들을 소망하였고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성을 바랐다는 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증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 이전에 살던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실제로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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