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여호와의 증인

7. 부활에 대한 소망.

모로나이 2009. 5. 13. 00:46

여호와의 증인들의 출판물을 보면 사랑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잃어버린 이들을 위하여 부활의 소망을 담은 내용들을 전하면서 전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부활의 소망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증인들이 말하는 부활은 정해진 사람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증인들에 대해 전혀 들을 수 없는 의로운 사람들이라면 “악인의 부활”로서 부활되어 다시금 성서의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이들은 부활의 소망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증인들이 없는 곳은 없을 것이며 그들이 전하는 소식 한 번 안들어 본 사람도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부활의 소망이 없게 되죠.


그렇다면 과연 증인식의 부활 이야기로 대다수의 선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일까요?? 체험담을 읽어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활의 시일에 가족들을 다시금 만날 소망을 가지고 있던데 실제 부활의 희망을 가진 이들은 거의 없는 것 아니던가요??


더욱 쉬운 예를 들어서 제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사망하였기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증인들이 다가와 제가 사랑하는 이를 다시금 만날 수 있는 부활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이는 증인과 여러번 만났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분명 그분은 부활할 수가 없을텐데 제가 증인이 전하는 소식으로 위로를 받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후기성도로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부활과 속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할 것 아닌가요? 그래서 사도 바울 역시 그러한 부활에 대한 간증을 전했던 것 아닌가요?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사도 24:15)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고 정결케 된 의인이 부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악인들 역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한 신앙대로 초기 기독교인들은 “더 좋은 부활”(히브리 11:35)을 얻고자 심한 고난을 감당해 냈던 것입니다. “더 좋은 부활”이란 말 이면에는 좋은 부활도 있고 나쁜 부활도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실제 “부활장”이라고 알려진 고린도전서 15장에는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듯 부활하게 될 사람들의 영광도 다르다고 알려줍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모든 이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지만 그 영광에는 차이가 있다는 소망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렇다고 하면 과연 어느 소식이 사랑하는 이를 잃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위로의 말씀이 될까요?? 모든 이들이 부활하여 만나게 되리라는 소망일까요? 아님 그 중 일부만 부활하고 그렇지 않는 이유는 완전 멸절되었다는 소식이 소망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