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문/여호와의 증인

증인 토론 내용

모로나이 2010. 5. 18. 00:59

-----> 성서 전후문맥을 보십시오.성서를 님 마음대로 확대 해석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전후문맥을 살펴보십시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고 예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셨음을 확실히 대조시켜주는 문맥이지님 말처럼 그안에 후에 하느님을 못봤다는 뜻이고 간접적으로만 봤네,,직접적으로 안봐서 한 표현이네;;비비꼬여서 이해하도록 씌여진 글이 아닙니다.

성서 어디에 "다윗은 하늘에 올라갓으나 하느님과 아들을 직접 보지 못하였다는 의미로 안 올라갓다고도 할수있다"고 나옵니까? 님 소설쓰십니까?

성 서에는 정확하게"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써있습니다

성 서의 말에 더하거나 덜하지 말고 문맥그대로 보십시오..더 이상 무슨 부언설명이 필요합니까?


성 경을 문맥 그대로 보라고 했던가요? 맞습니다. 특정 구절이 있으면 전후 문맥과 무관하게 떼어 놓고서 “여기봐사 이렇게 나와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 구절이 어떠한 배경에서 나왔는지부터 생각해 볼 일입니다. 사도행전 2:34절에 인용된 구절은 다윗의 시로 시편 110:1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구절에 대한 이해는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지 예수님이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예수는 하늘에 올라가셨음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다윗이 의도했다고 하는 것은, 성서 필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특정 교리를 옹호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지요.


다윗이 시편 110편을 쓸 당시 그가 하늘에 올라갔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지상에 살면서도 하늘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장면을 예언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필자가 다윗의 시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표현한 것 아닙니까?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도 2: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친히” 즉 직접 하늘에서 벌어지는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고 한 것 아니던가요?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하늘의 낙원을 경험했던 한 사람에 대한 기록과도 유사한 사건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2-4)


그가 몸 밖으로 영이 나간건지, 그대로 있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하늘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 못할 것들을 듣고 경험하였다 했습니다. 증인식 교리에 의하면 어긋나기에 영이 몸 밖으로 나갔다고 볼 수 없다 가정해도, 몸 안에 거하면서도 하늘 낙원의 것들을 경험하고 듣지 않았던가요? 이는 마치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친히 하늘에서 벌어지는 주님의 대화를 보고 경험한 것”과도 유사한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무조건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구절에만 집착하여, 그것은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은 무조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서 부활한다는 식으로 과장 확대 해석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일 뿐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____>여기보면 하늘로의 부활 순서가 묘사됩니다.맨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들이 일어난다고 하였지요?

그 리스도 안에서 죽으려면 적어도 그리스도를 믿고 알고있어야 합니다.그리스도 후부터 하늘 부활이 가능함을 알려주지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님의 주장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님의 주장을 액면 받아들이게 된다면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게 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 5:39)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 24:27)


자세히 읽어보길 바랍니다. 성경, 즉 예수님 당시의 구약 성경은 곧 예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라 하였으며, 실제 예수께서 구약의 모든 글로 시작하여 당신에 대한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성경을 기록했던 구약의 선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 적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며, 그분 안에서 소망을 갖지 못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한 다음 구절을 읽어 보길 바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아담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삶, 즉 부활을 하게 됩니다.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고전 15:45) 안에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 안에서”라는 말을 예수님 이후의 사람으로 한정했다 하나요??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게 속한 사람들에 대한 부활이 언급되었을 뿐, 지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한 부활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 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1)


--->욥이 말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은 창조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에서 바울이 그리스도 이후에 하늘생명을 고대하는 내용과는 상관도 없는내용입니다.마구 갖다 붙이지 마시기 바랍니다;;논리적으로 왜 바울의 말이 욥의 말인것처럼 생각해야되는지에 대해 이유를 말해야지,,님이 욥의 말이 이말과 같은 말이라면 무조건 같은 말이 됩니까;;,,제발 소설쓰지 마세요;;막 갖다 붙이지 마시고 정직하게 성서를 보십시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기 14:13-15)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욥은 자신의 부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죽어 부활을 기다리고 있을 동안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바로 답하겠다는, 그러면서 갑자기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님은 이에 대해 창조물이라고만 설명하셨을 뿐, 부활과 관련해 갑자기 창조물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는 아무런 설명도 안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님의 지적처럼 창조물을 언급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주의 손으로 지으신 창조물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요??


고린도 후서 5장과 욥기 14장을 비교해서 읽어 보십시오. 실상 바울과 욥은 동일한 부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후 5장 1장에서 바로 욥이 말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바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기록한 사람과 시대가 다르지만, 주님 안에서의 부활이라는 동일한 소망을 지닌 이들은 이처럼 하나님이 손수 마련해 주실 하늘의 집을 고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실제 욥은 다음과 같은 신앙을 표현합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 기 19:26)


님은 이 구절의 전후 문맥을 봐야 한다면서, 길게 성구의 내용을 인용하고, 심지어는 정몽주의 시까지 인용하면서 본인의 교리를 설명하려고는 하시나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은유적 표현이라고요?? 영혼 불멸 사상이 그토록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교의 사상이라고 하시는데, 그런 이교 사상을 담은 표현을 당대의 의로운 욥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는데 사용했다고요? 이것이 소설 아닙니까?


또한 25절에서는 욥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이것도 은유적 표현이며 시적 허용입니까? 대속자(예수)가 살아 계시고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는, 그래서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겠다는 그 고백이 사실은 은유적 표현에 불과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영적으로 임하셨으니 땅 위에 서실 수 없고, 욥은 영의 부활이 없이 육의 부활만 한다는 증인식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임시 방편적 교리는 아니고요??


참으로 답답합니다...


단순히 시대를 잘못 만나 땅의 희망이라니요;;

인간은 원래 이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창조된 존재임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하늘 반열은 예수를 도와 왕겸 제사장으로 일할 소수의 예수의 제자들뿐임을 성서는 거듭거듭 설명하는데 도대체 님들은 왜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합니까~!!


인간은 원래 이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살과 피로 된 몸으로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산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도 나와 있지 않은 교리일 뿐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 11:13-16)


증인들이 지상 낙원에서 생명을 누릴 것이라 호언장담하는 구약의 선진들은 실상 자신이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을 외국인이나 나그네로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서 본향(원래의 고향)인 하늘을 간절히 사모하였으며, 그에 대한 신앙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냥 그가 현대 기념식에 참석했다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늘 생명을 나타내는 표상물을 취했을 것입니다.^^)


증인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마치 모든 인류가 영원토록 지상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씀하시나 실제 성경 시대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을 잠시 머물, 임시적인 장소로만 여겼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0)


그렇습니다. 살과 피로 된 존재로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증인 출판물에 나오는 그림들, 예를 들어 낙원으로 변한 땅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다양한 색의 옷을 입고 밥 먹고 일하는 식의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이 구절은 하늘 왕국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설명하실 지 모르나 그렇게 분리해서 자기 입맛에 맛는 해석만 하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보는 방식이 아니지요.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전 15:44)


만에 하나 이 구절을 근거로 육의 몸은 지상 낙원의 삶을, 신령한 몸은 하늘에서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생각을 바로 잡으셔야만 합니다. 성경에서는 육과 영을 항상 상반되는 것으로 언급하지 두가지 구원 반열로 보는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전 15:47)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고전 15:48)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상 낙원에서 살 반열이라며, 자신이 흙에 속한 자로 믿는 것은 바로 육체의 일을 따르겠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침례요한의 겸손과 교만 문제를 말한것이 아닙니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의 길을 예비하였으니 인간중에 가장 큰일을 한자이지만

천국에는 올라가지 못하였으니 하늘에서는 지극히 작은자라도 저보다 큽니다.즉 땅반열임을 말한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슨 겸손이니 하는 문제가 나옵니까;;

웃음까지 나오려 하는군요

미사어구 막 갖다붙이면 지식없는 님의 동료들이야 "이야"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소설은 안통합니다

제발 억지로 자신의 말에 끼어 맞추지 마십시오;;

 

웃지만 마시고 뭐가 잘못된 것인지 성경적으로 반증할 일입니다. 님은 다른 글은 잘 퍼오시지만, 정작 본인의 믿음에 대해 성경적으로 반증하는 것은 잘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뭐가 억지인지는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의 판단에 맡겨야지 본인이 아무리 소리를 낸들, 아무런 설득력을 내지 못합니다.


이는 모르나이님이 성서의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겉넘는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히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모 로나이님은 성서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이 무슨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히 브리서 11장의 내용을 다시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 브라함의 후손들은 축복을 받았으며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결국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터가 있는 "예루살렘"성을 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 묘사된 그리스도인들은 더는 아브라함의 후손에 머물러 이땅에 실제 예루살렘성을 사모하는것이 아니라 더 큰 예루살렘인"영적인 의미의 새 예루살렘"을 사모할 수 있다는 축복을 기대한다는 너무나 쉽고 명확하게 대조하여 설명해준 구절들임을 알지못하시는지요;;

 고 대 예루살렘에도 왕과 백성이 있었듯이 새예루살렘 역시 새로운 통치권인 "새하늘"만 있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백성들인"새땅"도 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갓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계 21:1 -6)


설마하니 제가 증인이 말하는 새예루살렘을 모를까요? 통찰책에 의하면 그 새예루살렘은 “신부”이며 그 신부는 곧 144000명의 기름부음받은 자로 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사도 요한 자신도 그 영적 신부일텐데, 그가 직접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다니 말입니다. 요한 역시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새예루살렘으로 인한 축복을 받을 것임을 말하였는데 실제 그 예루살렘이 144000명이라니요...


님이 인용하신 성구를 잘 보길 바랍니다. 하늘에서 새예루살렘이 내려오면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하나님은 친히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친히 함께 하신다는 말은, 무슨 영적인 의미를 둘 것도 없이 사람들과 하나님의 함께 거한다는 말입니다. 현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히 함께 하신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나, 새예루살렘이 내려오고 나서도 그런 관계를 계속한다면 별다른 특이점이나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새예루살렘이 내려온다는 말은 구원받은 인류가 하나님께 함께 거하는, 하늘 생명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성은 지구에 내려올 수 없습니다. 새예루살렘의 크기를 설명하는 구절들을 보면 통찰책의 표현대로 “사람이 만든 도시로는 우주 공간으로 그토록 머리 뻗어 나갈 도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 새하늘과 새 땅은 무엇입니까? 누구의 말마따나 하늘나라와 지상 낙원을 구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하늘과 땅을 함께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관할 하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요한계시 5:3,4, 빌립보 2:10, 이사야 42:5, 출 20:4 참조)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사 방에서 모으리라” (마가 13:27)

그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하늘에서 다스릴 144000명과 그 외 지상 낙원에서 살게 될 자들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될 것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이 굳이 하늘의 영적 세계와 이 지구에만 한정 될까요?? 모든 우주를 관할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지구를 포함하는 모든 우주가 주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닐까요?


성경은 하느님의 영으로 만들어진 하느님의 편지이자 진리의 교과서입니다.

성경은 그 한획도 헛되게 씌여진 것이 없으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 주제가 똑같습니다.

님들이 참종교인 여호와의 증인을 제대로 볼려면 모든 편견을 버리고 님들의 지식없음을 인식하고 진심으로 "목말라"할때 깊이있는 성경진리가 보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을 비방하는것도 그후의 일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교만한것이 아니고 너무너무 기초부터 설명해야하지 답답해서 그럽니다;;

먼저 기본적인 지식만이라도 갖고 우기든지 대화해야만 무슨 설득력이라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모든 편견을 버리고 지식없음을 고백하여 목말라하면서 증인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출판물이 아닌...통치체의 것들이 아닌, 오로지 성경만을 공부하며 영의 인도를 간구했을 적에, 증인들의 교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깨닫게 되었더군요. 우물안 개구리는 자기가 속한 세상만이 전부인줄 압니다. 정작 그 우물 밖으로 나와서 우물을 봤을 때 얼마나 좁은 세상인지를 깨닫고 그동안 낭비했던 시간에 대해 한탄을 하지요..


전 그런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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