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께서 그분의 블로그를 통해 교회의 무보수 성직자에 대한 부분을 두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셨다. 교회는 보수를 받지 않는 성직자가 있고 그것은 참된 교회의 특징이라면서 자랑을 하면서도 실제로총관리 역원을 비롯하여 선교부 회장, 그리고 다른 교회 직원들의 경우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돈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심각한 위선이라는 식의 글이었다.
교회 회원들이 무보수 성직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그에 반대되는 개념, 즉 사제술(priestcraft)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돈 받고 교회 봉사를 하면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하고 말이다. 그럼 몰몬경에 등장하는 이 사제술이란 무엇인지 보자.
“사제술이란 사람들이 가르침을 베풀되, 스스로를 세상을 위한 빛으로 세워 이익과 세상의 칭찬을 얻으려 하는 것임이라. 그러나 그들이 시온의 복리를 구하지 아니하느니라” (니파이후서 26:29)
즉, 하나님의 말씀을 빌미로 하여 스스로를 내세우거나 세상의 칭찬을 얻으려는 것을 사제술이라 하며 이에 대한 경고는 경전에서 반복되고 있다. (앨마서 1:12,16, 3니 16:10,21:19, 교성 33:4) 이러한 이유를 들어서 교회 봉사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돈이 이러한 사제술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경전상에 등장하는 사제술이란 시온의 복리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위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정죄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교회의 부름은 세상적인 직업처럼 돈을 벌기 위해 개인이 노력하거나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주님의 부름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봉사를 위해 몇몇 소수에게 지원되는 생계비는 특정 개인이 교회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노력에 따르는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시간을 교회에서 봉사해야하는 이들의 필요성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생계유지를 위해 도무지 교회 봉사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만 주어지는 것이다.
보통 선교사로 나가는 젊은이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저축해둔 돈이나 가족들의 지원을 받지만 그럴 환경이 되지 않는 경우 교회의 선교사 기금의 지원을 받아 나간다. 나 역시 2년간 선교사업을 하면서 일부만 충당할 수 있었을 뿐, 대부분은 교회 선교사 기금을 지원받아 봉사할 수 있었다. 한 푼 한 푼이 주님의 돈이라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헛되게 사용할 수 없었으며 최선을 다해 주님께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만약에 100% 개인의 돈으로만 선교사를 나가야 했더라면 상당수 개종자나 가난한 젊은이들은 선교사로 봉사할 특권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 더욱 합리적이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을까? 무보수를 원칙으로만 해야 했을까? 아니면 봉사하고 싶으나 그럴 능력이 전혀 없는 이들을 지원하면서 교회와 개인에게 축복이 되는 일을 해야했을까? 난 아무리 봐도 후자에 경우가 더욱 합리적이라고 보는데 단순히 돈을 지원받았다는 이유로 이를 사제술과 연관지을 수 있을까? 선교사를 하면서 세상적인 명예와 이익을 볼 수 있다? 글쎄 세상적으로 손해를 보면 봤지 명예와 이익을 얻은 것은 없다고 보는데..^^;;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또 이런 식으로 비아냥 거릴 뿐이 있을지 모르겠다. 몰몬교에서 돈을 받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보수 성직자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니다...교회에 무보수 성직자들이 있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문적인 성직자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 교회에는 지도자라는 위치에 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학 학위를 받는 개인이 없다.
* 교회 내에 상당수의 교회 지도자들(감독, 스테이크장, 지역 칠십인, 상호부조회 회장 등등)은 그 어떤 재정적 지원이나 신학 학위를 받은 적이 없다.
* 선교사들이나 그들의 가족은 보통 그들의 선교 비용을 스스로 충당한다.
* 교회에는 직업적인 성직자가 없는데 다시 말해 고용의 형태로 몰몬교의 신권을 받고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특정한 부름을 가지고 싶어 신학에서 공부하여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예언에 의하여 또 권세 있는 자에 의한 안수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야”(신앙개조 5조)만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 생계비를 지원받는 소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이미 수년간 무보수 자원으로 교회 지도자 위치에서 봉사해 왔으며 특정 직책으로 올라가 돈을 벌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 경전에서도 교회 지도자들이 재정적인 필요에 놓여 있는 경우라면 지원을 통해서 지원했던 경우를 소개하고 있다.
“참으로 또한 그들의 모든 제사와 교사들도 병이나 심한 궁핍에 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우에 자신들의생계를 위하여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일할 것이라 하였으니, 이렇게 행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더라.” (모사27:5)
“매사에 보좌로서 감독을 돕도록 임명된 장로나 대제사들은 앞서 언급된 대로 가난한 자의 유익을 위하거나 또 다른 여러 목적을 위하여 감독에게 헌납된 재산에서 그들의 가족이 부양받게 해야 하느니라 .”(교성 42:71)
이처럼 교회 내에서는 전문적이고 돈을 받는 성직자가 없다. 다만 경전에서 언급한 것처럼 특수한 경우는 교회의 지원을 받는 것이 요구됨을 설명하고 있다.
그럼 교회의 지도자 체계를 한 번 보자.
교회의 지역 지도자들
현재의 성직일을 보고 있는 대다수의 지도자들은 지역 교회(와드나 지부)에서 봉사하면서 그 어떤 돈도 지원받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봉사를 위한 준비를 위해 학문적인 훈련 또한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감독은 보통 5년간을 봉사하는데 그가 감독으로 봉사하는 동안에 현재의 직업에 충실하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선교부 내의 지도자들
선교부 회장은 보통 3년을 봉사하는데 “요구될 경우” 봉사를 하는 동안 생계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상당수의 선교부 회장들은 그들이 봉사하는 동안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이미 재정적으로 준비된 분들이다. 그리고 그 부름을 마친 뒤에는 본업으로 돌아오며 그 이후에도 생계비를 지원받지 않는다.
총관리 역원들
십이사도 정원회나 칠십인 제일정원회와 같이 교회의 특정 부름들은 평생동안, 즉 죽을 때까지 그 부름에 속해 있다. 이러한 경우, 요구되었을 경우에 검소한 형태의 생계비가 지원된다. 교회의 회원들은 이 생계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 존재하면서 상대적으로 검소한 형태의 액수라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고든비 힝클리 회장은 다음과 같이 발표한 바가 있다.
“ 총관리 역원들에게 제공되는 생계비는 사업이나 전문직종에서 일하고 받은 연금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검소하며 교회 사업체에서 충당되는 것이지 회원들의 십일조에서 충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칠십인 정원에서의 부름은 전시간 봉사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생계비를 지원받지 않는다.
또한 종교교육원(CES)에서 교사로 전시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소수 있긴 하지만 그러한 직책은 교회의 부름이나 봉사가 아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감독이나 스테이크 회장, 혹은 지역 칠십인과 같은 지도자에 의해 부름 받는 것이다. 어떤 누구도 그러한 직분을 위해 로비 행사를 하지 않으며 만에 하나 그러한 노력이 있다고 한다면 교회 봉사 직에서 봉사할 자격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부름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는 것이 때문이다.
결론을 내려보자.
많은 총관리 역원들은 이미 그 전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문적인 직종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 세상적인 명예와 부귀를 누릴 수 있는 직장을 포기하고 주님의 일을 위해 전시간 헌신한 이들은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피곤한 줄 모르게 일하며, 엄청나게 바쁜 일정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주님의 사업을 진척시키고 있다. 물론 그들에게 제공되는 생계비는 십일조가 아닌 교회 투자업체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무보수 성직자의 관습은 교회가 참되다는 증거는 아니다. 이미 다른 교회에서도 훌륭한 성직자들이 있으며 자신의 돈으로 봉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성직자로서 돈을 받지만 많은 헌신과 사랑을 보이는 분들도 분명 있다.
경전에서 비판하는 사제술이란 단순히 돈을 받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부와 명예를 위해서 복음을 파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제술은 비단 다른 교회 사람만이 아니라 후기성도 내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만에 하나 총관리 역원 중에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교회 일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역시 사제술에 관련된 자라고 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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