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와 교리/몰몬경

몰몬경의 구모라 언덕이 뉴욕주 "구모라 언덕"과 같은 지역인가?

모로나이 2009. 12. 20. 22:59

X모 사이트를 보니 “구모라 언덕”에 대한 제1회장단의 공식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외부적으로는 몰몬경에 나오는 구모라 언덕과 몰몬경이 발견된 ”구모라“ 언덕은 다른 곳이라 하면서 실제 제일회장단은 그 두 지역을 동일시 한다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라면서 제일회장단 비서에게서 온 서한까지 인용했더군요.


그런데 정말 몰몬경이 발견된 쿠모라 언덕과 니파이인들의 최후 격전 지역이었던 쿠모라 언덕은 동일한 지역입니까? 오해를 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몰몬경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니파이인들의 최후의 전투지는 쿠모라 땅이었습니다. 몰몬은 그가 “아들 모로나이에게 내가 준 이 몇 장의 판을 제외하고는 주의 손으로 내게 맡겨졌던 모든 기록을 쿠모라 산에 감추었느니라.” (몰몬 6:6)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니파이인들은 전멸하고 오직 모로나이만이 그의 아버지 몰몬의 기록을 끝내기 위하여 남아 있었죠. 그리고 모로나이는 레이맨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생명을 보전하고자 이곳 저곳으로 피해다니게 됩니다. (모로나이 1:3)


기록의 마지막에서 모로나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얼마간 기록하되, 나의 형제 레이맨인들을 위하여 기록하노니, 나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표적이 주어진 이래로 사백이십 년 이상이 지나갔음을 그들이 알기 원하노라.” (모로나이 10:1)


이 구절에 의하면 모로나이는 그의 백성이 멸망한 이후로 36년 동안이나 떠돌아다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421-385=36년) 이 시간은 모로나이가 도보로 중미에서 뉴잉글랜드로 여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그는 가능한 레이맨인에게서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길 원했기 때문에 그처럼 먼 지역으로 이동했을 것임을 설명해 줍니다. 그곳에 도착한 이후에 모로나이는 금판을 묻었으며 그것을 조셉 스미스가 발견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두 지역은 동일한 지역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다만 교회 회원들이 뉴욕 주에 있는 언덕을 “쿠모라 언덕”이라 부르는 이유는 올리버 카우드리나 WW펠프스에 의해 사용되었을 표현을 차용하는 것일 뿐 실제적으로 두 언덕이 동일한 지역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제일회장단에서 온 서한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정말 제일회장단은 뉴욕에 있는 “구모라 언덕”을 니파이인들의 최후 전투지와 동일시 했을까요?


다음은 제일회장단에서 왔다는 서한의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제1회장단 사무실

유타, 솔트레이크시 84150

1990년 10월 16일

Darrell L. Brooks 감독

무어 와드

오클라호마 시 오클라호마 남 스테이크

1000 Windemere

오클라호마, 무어시 73160


Brooks 감독님에게:


저 는 (총회장단이) 감독님의 와드에 속한 Ronnie Sparks가 고든 비 힝클리 총회장님에게 쓴 서신을 받아서 다루었음을 감독님에게 전달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Sparks 형제는 니파이인과 래이멘인들 사이에 일어난 마지막 전투가 일어났던 몰몬경에서 언급한 구모라 언덕의 위치에 대해 물어왔었습니다.


총관리 역원들의 글에서 명백하게 증거했듯이 교회는 뉴욕주 서부 지역이 몰몬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곳과 같다는 것을 오랫동안 주장해왔습니다.


총회장단은 감독님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달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Sparks 형제님이 복음 공부에 열심인 것을 칭찬한다는 말까지 전달해주시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친애하는,

마이클 와트슨

제1회장단 비서








그러나 와트슨 형제가 그 서한에서 밝힌 것은 교회 정책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이해를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그 서한은 교회 공식적인 입장으로 내려온 것도 아니며 특정 개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기존의 관행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교회의 제일회장단은 특정 개인의 질문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서한은 제일회장단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기 보다는 와트슨 형제의 개인적 생각을 담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서한이 개인에게 온 것이었음에도 오클라호마를 중심으로 이 서한을 근거로 하여 안티 몰몬들은 비판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문제거리가 되어 회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FARMS의 회원들은 이 서한을 제일회장단에 요청했고 그 진실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은 팩스가 제일회장단의 사무실에 전달되었으며 교회의 입장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교회는 몰몬경의 교리적 역사적 가치에 대해 강조할 뿐이며 그 지리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습니다. 몇몇 후기성도들이 몰몬경의 지리적 배경에 대하여 가능한 위치나 설명을 추구해 왔습니다. 뉴욕 주에 있는 ‘구모라 언덕’은 실제 구모라 언덕에 관련된 몰몬경의 묘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몰몬경과 특정 지역 사이에 결론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무어감독에게 왔다는 제일회장단의 서한은 제일회장단 비서였던 와트슨 형제가 그에 이해에 따라 답변한 것이며 교회의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몰몬경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구체적 지명을 지정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공식 입장이며 이것은 변함이 없는 정책으로 누구의 말마따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조셉 스미스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요? 정말 누구의 말마따나 조셉 스미스는 구모라의 위치나 몰몬경의 배경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했는데 후대의 교회 지도자가 그 발언들을 전부 무시하고 "공식적 입장이 없다" 운운하는 것일까요?


사실 조셉 스미스는 몰몬경의 지리적 배경에 대해 참으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변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초기에 조셉 스미스는 일리노이주를 일러 “니파이인의 평원”이라 지칭하였으며 (1834년 시온 캠프에서 그의 아내 에머 스미스의 편지에 나오는 표현) 1840년에는 시온의 땅이 북남미 전역으로 되어 있다고 가르친 바 있습니다. 그런데 1842년 경에 미국의 고위 관계자와 토론한 내용을 보면 몰몬경의 지리적 배경에 대해 언급할 때 과테말라의 유적지를 그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1842년 10월1일자 타임즈 엔 시즌즈에서는 제이라헤믈라 땅이 중미 지역에 서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조셉 스미스 역시 몰몬경 지리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생각을 표현했을 뿐이며 이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었습니다. 선지자라면 의당 모든 부분에 의해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분들은 이 역시 조셉이 거짓 선지자라는 증거로 보일지 모르나, 경전과 역사가 증언한 것처럼 선지자 역시 개인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비판적으로 생각할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