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찾아 삼만리’라는 블로그의 운영진은 계속해서 여호와가 예수였다는 후기성도의 교리에 문제가 많다면서 여러 글들을 올리고는 있지만 하나같이 핵심은 발견할 수 없고 글도 산만해서 도무지 그 요지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힘듭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글에서 뭔가 오류를 발견했다면서 기뻐하면서 올린 글을 보면 그 바둥거림에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뭔가 트집거리를 발견했기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울 뿐이었습니다. 제 글에서 뭔가 모순이 있다는 말인지요.
(1)즉 구약 시대의 인물이 어느 정도 앞으로 오게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한다는 것입니다
(2) 따라서 이 모든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그 성역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그 이후 사도들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기록을 인용하여 바로 예수를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첫 번째 글에서의 핵심은 “구약 시대의 인물이 어느 정도” 예수님을 모형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선지자들도 포함되지만 이스라엘을 해방한 바사 왕인 고레스처럼 주님을 증거하는 선지자와 무관한 이들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글에서의 핵심은 “모든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글의 “구약 시대의 인물” 개념에 “모든 구약의 선지자”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언했습니다. 제가 예수를 예표하는 것과 관련하여 “선지자들의 성역”이라고 한정한 것은 선지자의 모든 행위가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성역이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차이점을 무시하고 그저 트집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표현상의 차이를 “모순의 증거”로 지적하면서 자신이 족집게니 뭐니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제시하고 있는 구절이 시편 110:1절의 내용입니다. 그저 하나로 정리하면 될 것을 뭐가 그리 급하다고 여러 개의 글에 분산시켜 똑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가중시키고 설득력을 반감시키는 것을 모르시는가 봅니다.
저는 이전 글에서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예표하였기 때문에 마치 퍼즐 맞추기 식으로 구약 어디에 A가 나왔으니 그것은 신약에서도 A가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의 논리적 비약에 대해 지적해 왔습니다.
http://blog.daum.net/ldsbae/13738761
저의 글을 읽어 보고나서 반론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반론이라고 제시한 것도 하나같이 감정적이고 동일한 순환 논리에 불과합니다.
님의 글을 보지요.
저의 의견을 전하기 전에 이 구절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신약 학자인 로울리에 의하면 110:1절에서 나오는 “나”는 제사장 사독으로 “나의 주”는 다윗을 말하는 것이며 둘째장이 시작하는 4절은 다윗이 제사장 사독에게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여부스 족속에서 빼앗은 후에 원래 그 성의 제사장이었던 사독이 다윗을 예루살렘의 새로운 통치자로 선포하던 배경을 깔고 있는 시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앤더슨이라는 학자에 의하면 이 구절은 집례하는 제사장으로서 제의적 선지자 혹은 제사장이 왕에게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말하는 “내”가 제의 선지자, 왕실 선지자, 혹은 왕궁 시인으로 봅니다. 가톨릭 학자들 역시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시편 110편은 이스라엘 임금의 대관식 예식과 관련 있습니다. 1절의 말씀은 성전 예언자가 대관식에 참석한 회중에게 신탁(하느님이 전하는 말씀)을 외칩니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는 예루살렘 성전의 남쪽을 가리키는데, 이곳에는 임금의 집무 청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라는 말은 임금의 원수들을 완전히 굴복시킬 때까지 이곳에서 왕정을 펼치라는 뜻입니다.“
즉 이 시의 배경은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제사장인 사독이 다윗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4절에 이르면 그 보고를 받은 다윗이 그 제사장에게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리라’는 축복을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실례로 “나의 주”로 번역된 ‘주’는 히브리어로 "adon" (Nwwvda)인데 이는 여호와가 아닌 군주나 주인, 통치자를 지시할 때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래 인용하는 구절에서 진하게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 모두 시편 110편에서 ‘주’로 번역된 "adon"입니다.
“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창 24:36)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창 32:4)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삼상 25:27)
“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말하기를” (열상 20:9)
이처럼 시편 기자는 선지자로서 주님의 계시를 “내 주”, 즉 다윗 왕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주라는 표현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존경과 경외심을 표현할 때 사용되며 왕과 백성 사이에 주인과 종으로서 맺어진 언약 관계가 있음을 강조해 줍니다.
이 구절에서 나오는 “내”가 선지자나 제사장이라고 하면 그가 말한 “주”는 다윗 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선지자로서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일러 “다윗의 뿌리“(계시록 5:5,22:16)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계시록 3:7)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절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이 모두 예수님에게 일차적인 성취를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53:2절에 나오는 “자라나기를”이란 표현은 문자적으로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 형)로 되어 있습니다. 즉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런 고난의 선지자로서 이사야 이전 인물로는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는 있겠습니다. 즉 이사야 전체의 기본 주제가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강렬한 회개의 촉구인데 과거 고난의 선지자들의 모습을 빌어 그들이 전한 회개의 말씀을 강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모습을 선지자의 고난을 빌어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님의 반론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해 보았습니다. 언제든지 반증을 환영합니다만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반말에 비아냥 거림을 잔뜩 담은 글들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주장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한들 그 표현 방식에서 저속한 표현들을 남발 경우는 그 진실 자체에 큰 오점이 생긴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하길 바랍니다. (추후에 진행 방향을 보고 다른 주장에 대해 반증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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