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잡담

선교사업에 대한 추억..

모로나이 2014. 12. 4. 02:44

 

                                                           

 

 

제게 선교사업이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선교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듣긴 했지만 그건 그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20대라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것도 자비로 2년이란 시간을 교회를 위해 바친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더군다나 비회원인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고 떠난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회원 선교사업이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선교사들과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토론도 많이 참여하고 길 전도도 함께 했습니다. 곤란한 구도자들이 있다면 선교사들은 바로 저에게 전화를 주었고 저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그분들과 함께 복음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주위의 회원들도 제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 주었던 것인지 선교사업에 대한 권유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점차 먹어가게 되었으며 20대 후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졸업을 하여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인가 계속 선교사업을 해야겠지 않냐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와서 얼마간 당혹스러웠습니다. 하나님 아시쟎아요..전 가족 회원이 아니라 가족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나갈 여유가 없습니다..그래서 그냥 선교사들이란 열심히 봉사하쟎아요...귀환 선교사들보다 더 열심히 회원 선교사업 할테니 전 그냥 선교사업 안하겠습니다. 이제 선교사로 나갈 나이도 거의 끝나갑니다..선교사로 봉사하지 못한 만큼 더 열심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저는 이러한 이유들을 들어 선교사업에 대한 느낌을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업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계속 강하게 찾아왔으며 그 때부터 이상하게도 선교사들과 몇몇 회원들이 선교사업을 고려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고를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잠에서 깨어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선교사로 나가야겠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저는 무턱대고 선교사로 나갈 계획을 품었으며 감독님과 접견을 하고 페이퍼를 작성해서 보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 중에서도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그리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다 어떻게 충당해야할까...머리 속이 너무 복잡해 그냥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었습니다.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준비하는 이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저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셨습니다. 하나님..하나님이 저 선교사업 나가라고 하셨지요..그러니 책임져 주세요. 길을 열어주세요...부지런히 기도하면서 그분의 손길이 함께 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그저 흘러갔습니다. 부모님께는 2년이란 시간을 제가 무엇을 하던지 허락해 주신다면 그 이후 모든 일들이 다 풀려갈 것이라는 확신을 드리려 했는데 그것은 곧 제 신앙의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2년을 주님을 위해 봉사했는데 그 이후에 주님께서 제 앞날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고, 아무 도움을 받지도 않고 선교사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선교사업을 나가는 그 순간에도 전 여러 번 주저했습니다. 부모님께 괜히 죄를 범하는 것 같아 너무나 죄송스러웠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졸업 이후 취직해서 부모님 도와드리고 결혼도 해서 손자 손녀들도 안겨드리는데 이 아들이란 놈은 교회에 빠져 2년이란 시간을 전도한답시고 돌아다닌다니...제가 부모님 입장이라도 분명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교사업을 앞두고 성찬식 인사 말씀에서 저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펑펑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 제가 떠나 있는 동안 저희 가족들을 보호해 주세요. 전 정말 주님만 믿고 떠납니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다른 이들처럼 가족들의 환대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선교사로 떠나지만 저에게는 하나님이라는 강한 지원군이 있었기에 그분 한 분만을 믿고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선교사업은 제게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주님을 대표하는 이름표를 달고서 그분의 회복된 복음을 전하는 순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저의 입을 통해서 성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선교사업 초반에는 너무나 아파서 주님을 사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동반자 앞에서 울기도 했습니다. 선교사업 중간에는 가족들이 저를 데리러 오겠다는 연락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역지도자(ZL)가 되었고 그것을 선교회장님께서 집에 우편으로 보내셨는데 집에서는 제가 이단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노발대발하면서 찾으러 오겠다고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골방에 들어가 울부짖으면서 가족들의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부디 제가 2년간을 무사히 선교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수술 받으러 들어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그 먼 곳에서 아버지 머리에 손을 얹고 병자축복을 해드리고 싶어 (그것이 적절하지는 못했을 지라도) 아버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내 두 손을 그분의 머리에 올리고 병자축복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설령 함께 있다 해도 제가 드리는 축복을 거부하셨을 아버지셨기에 저는 감히 상상속으로나마, 가능하다면 제 영이라도 그분에게 다가가 축복을 주고 싶은 마음에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그리며 축복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독실한 어느 기독교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온갖 욕설을 늘어놓으면서 그곳에서 떠나라 외쳤을 때에도 기쁨을 느꼈던 순간들..복음을 알고자 하는 가족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동들... 정말 순간 순간 울고 웃을 수 있었던 많은 경험들을 선교사업 중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 중에서도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그 위대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선교사업이 아니면 감히 느낄 수 없었던 그런 충만하고도 행복한, 그러면서도 신성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시려 주님께서는 완고한 저를 돌이키시고 늦은 나이에도 선교사업을 행하도록 하셨구나...이런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2년이 흘렀으며 귀환을 했습니다. 다른 동기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환영을 받으며 집으로 갔을테지만 저는 부모님께 영원히 외면을 당하지나 않을까 너무나 고심하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할까..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아버지를 보자 마자 그저 꽉 안아드리고 사랑합니다고 속삭였습니다. 아무리 주님의 사업이고 제겐 축복이었으나 부모님에게는 불효한 것이 맞기에 한없이 죄송스러우면서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셨던 부모님께 감사했습니다.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아무 말도 안하시고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 이후에 저는 귀환 선교사였던 아내와 만나 성전에서 결혼하여 이제는 사랑하는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부모님께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2년이란 시간만 허락해 주시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아버지께 약속드린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듯합니다.

 

선교사업은 기회이며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이 사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제가 이 교회에 아직까지 남아있을 것이며 성전에서 아내와 결혼을 했을까요? 회복된 복음의 그 권세를 제가 더욱 깊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