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적대시하는 이들이 자주 내세우는 것 중에 하나가 조셉 스미스의 일부다처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나 조셉이 14세의 소녀, 그리고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들까지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식의 기사는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이들이 이런 저런 자료들을 편집해서 하나의 막장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처음 들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충격을 받고 신앙의 위기를 초래하거나 마치 교회가 자신들을 속인 것처럼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조셉 스미스는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11-14명 정도)과 인봉을 했다고 알려줍니다. 인봉의 의미를 단순히 결혼과 그에 따르는 성관계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조셉이 유부녀와 놀아났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이미 충분히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의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인봉의 의미라든지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연구를 어느 정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되려 “조셉과 유부녀와의 썸씽” 운운하면서 회원들을 미혹하고 오히려 자신이 그동안 받았던 빛마저 거부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보면 “미혹의 영”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한1서 4:6)
이전 글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조셉과 유부녀들이 인봉을 했다”라는 말 자체만 두고 괜한 음란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조셉이 다른 유부녀와 종교의 이름으로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하면 세상에 어느 남편이라는 사람이 가만히 두고만 보겠냐는 것입니다. 그런 여인들의 몇몇 남편들은 교회 회원들이 아니었고 내세에 관하여 관심도 없고, 그 사실 자체를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조셉 스미스와 “인봉”이라는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했다고 하여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는 점이 왜 이리도 이해가 어려운 것일까요? 정작 당사자들은 그에 대해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었으며 조셉과 인봉한 아내와 죽을 때까지 가정을 유지하며 자녀들과 행복하게 살았는데 왜 제 3자들이, 그것도 100년이 훨씬도 지난 이후에 사람들이 남겨진 몇몇 기록들을 가지고 이런 저런 추측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 조셉 스미스와 유부녀와의 성적인 관계’ 운운하는 소설을 만들어 내고 있냐는 것입니다.
몇몇 이들이 과대포장해서 만들어 내는 그런 막장 드라마를 무턱대고 믿기 보다는 과연 조셉과 인봉을 한 여인이나 그녀의 남편들은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몇가지 사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조셉에게 인봉된 것으로 알려진 룻(Ruth)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조셉 스미스의 아내인 에머 스미스의 승인 하에 영원을 위한 인봉 의식을 받았지만 남편인 에드워드 세이어스(Edward Sayers)와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룻의 남편인 에드워드는 교회 회원이 아니었으며 그 인봉 의식 자체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조셉 스미스의 좋은 친구였죠. 에드워드는 내세에 관한 이론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조셉과 좋은 친구였기 때문에 오히려 아내가 조셉 스미스와 영원을 위한 인봉 의식을 받는 것에 대해 지지할 정도였습니다.
메리 엘리자베스 롤린스(Mary Elizabeth Rollins)라는 여인도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비회원인 에덤 라이트너(Adam Lightner)인데 그 역시 아내가 조셉과 인봉하는 것을 찬성하였습니다. 메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제 남편은 교회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교회에 들어오기를 간청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남편은 조셉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교회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그는 조셉 스미스, 하이럼 스미스, 조지 에이 스미스에 반대하는 증언을 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의 재산을 희생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남편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에 저는 바로 가서 조셉과 인봉하였습니다.” (Mary Elizabeth Rollins Lightner, “Remarks” at B.Y.U April 14, 1905)
물론 메리는 조셉과 인봉한 이후에도 1885년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살았습니다.
사라 킹슬레이(Sarah Kingsley)라는 여인의 예도 들어봅시다. 그녀는 비회원인 존 클레브랜드(John Cleveland)과 결혼을 했고 나중에 조셉과 인봉을 했습니다. 사라의 남편은 존은 교회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흥미가 없었지만 교회 회원들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훗날 사라는 조셉이 죽고 성도들이 서부로 이주할 적에 남편과 떨어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성도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지만 브리검 영 회장은 그녀에게 남편과 함께 머물 것을 충고했습니다.
“브리검 영과 정원회는 사라에게 남편과 함께 머물 것을 권유했습니다. 비록 몇가지 이유로 인해 남편이 복음과 관련하여 마음이 어두워지기는 했으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친절하게 도운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라는 정원회의 충고에 순종했으며 남편과 함께 머물렀고 죽을 때까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충실한 회원으로 남았습니다.” (Anon. Biography, CHL. Possibly by August Cleveland Smith quoted in Todd Compton, In Sacred Loneliness: The Plural Wives of Joseph Smith (Salt Lake City: Signature Books, 1997), 283)
또 다른 여인인 루신다 팬들톤(Lucinda Pendleton)의 예를 들어 보죠. 그녀는 이미 충실한 교히 회원인 조지 더블류 해리스(Jeorge W. Harris)와 결혼한 상태입니다. 그녀의 경우는 조셉 스미스와의 인봉이 1846년 2월 22일, 그러니까 조셉이 죽고 나서 2년 뒤에 나부 성전에서 조셉과 대리로 인봉한 경우입니다. 나중에 1899년에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조셉과 다시 대리로 인봉 의식을 받았는데 이런 여인이 어떻게 조셉과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겠냐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조셉과 다처 결혼을 했다고 알려진 여인들은 하나같이 인봉 이후에도 자신의 남편과 살았으며 조셉과 어떤 관계도 맺은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조셉이 죽은 이후에 대리로 의식을 행한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이 교회 회원이거나 비회원이거나를 막론하고 인봉 의식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고, 단지 종교적 의식의 하나로만 볼 뿐인데 왜 훗날, 그것도 교회에 적대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하나의 고려도 하지 않은 채로 일방적으로 막장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들은 그저 이렇게 수준 떨어지는 말만 할 뿐입니다. “섹스 없는 결혼이라니 말도 안돼”
몇몇 이들이 조셉 스미스와 일부다처를 했다는 여인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논란을 벌이고 있을 때 정작 영의 세계에 있는 당사자들은 얼마나 황당해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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