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충실한 회원이거나, 아니면 교회를 반대하는 이들이거나 상관없이 공통적인 것들이 있다. 바로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알 수 없는 기대감(?)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충실한 회원들은 누군가 교회 지도자들의 약점을 언급하거나 부족함을 들먹일 경우는 불길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배도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교회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교회를 반대하는 이들은 또 그러한 지도자들의 약함을 들먹이면서 교회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뿌린다.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이 이런데 교회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뭐 대략 이러한 논리인 것 같다. 둘 다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양 극단으로 치다를 경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후면 제프리 알 홀란드 장로님이 한국에 오셔서 여러 차례 모임을 할 예정이라 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보면 홀란드 장로님은 다른 어느 총관리 역원들보다 열정적이면서도 확신에 찬 강한 말씀을 통해 많은 회원들에게 큰 영감을 주셨던 분이시다.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면 당장 그 자리에서 뛰어나가 그분의 가르침대로 행하고자 하는 열의로 가득 차게 만들어 준다. 단순히 조용하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을 전하시는 그 어느 분보다도 열정과 신앙, 그리고 담대함으로 가득차 있는 듯 한 그 분의 말씀을 나는 너무나 좋아한다. 하지만 몇 년 전 홀란드 장로님과 영국의 BBC 기자와의 인터뷰 중의 일부가 유포되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여과없이 드러낸 적이 있었다. 연단에서는 그토록 강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었는데 기자가 전하는 몇가지 질문들에 당황해하면서 어설픈 듯 한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처럼 실망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이를 기회로 삼아 덤벼드는 적대자들의 반응도 많았다. 이런 사도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뭐 이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홀랜드 장로님과 BBC 기자와의 인터뷰
이런 인터뷰로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교회를 떠났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반응들이다. 물론 교회의 사도이기 때문에 과거 다른 이들처럼 담대하게 그 거짓을 드러내고 오히려 그 기자에게 회개를 외치면서 바른 가르침을 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위태롭게 하거나 교회가 거짓이라는 증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결론이다.
교회의 사도라고 하여 완벽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멋있고 항상 담대하게 간증을 전할 것 같았던 우리 신앙의 영웅들이며 멘토들인 그들의 약점이 과연 우리의 신앙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영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 당시의 사도들은 누가 높은 것인지를 두고 툭하면 논쟁을 하였다. (마가 9:34)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은 '우뢰의 아들'(막3:17)이라 불릴 정도로 다혈질이고 충동적(눅9:49,54)이며 야심(막10:37)으로 가득찬 자였다. 수석 사도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정하면서 배반한 적이 있는 경력이 있었다. 사도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자신의 눈으로 보고 못자국을 본인의 손으로 만지지 못하면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다.(요한20:25) 이처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들은 대부분 인간적인 약함과 부족함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로마서 15:4)라는 말씀처럼 사도라 하는 자들의 연약함과 수치스러움이 하나의 미화의 작업도 없이 그대로 기록된 것은 결국 우리의 교훈을 위해 남겨진 것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하면 왜 어떤 이들은 현대 사도들의 모습 속에서 완벽을 기대하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경우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것일까? 그리고 몇몇 충실한 회원들은 왜 사도들(교회 지도자들)의 연약함이나 인간적인 점들을 드러내면 왜 분노하고 그 개인의 신앙을 의심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만 바라보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면 경전을 기록한 이들은 결국 지도자들의 약함은 모두 감추고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줄 긍정적이며 밝은 모습만 기록했어야 한다는 것인데 왜 그들은 나약한 모습을 한 치의 미화나 감춤도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 모든 모습들이 결국 “교회 지도자”에 대한 그릇된 관념 속에서 등장하는 극단적인 두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들의 연약함들과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처럼 완벽한 자들도 아니고 경전에 기록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이며 “세상의 약한 것들” 이기 때문이다. (고전 1:27) 하나님은 바로 그런 약한 자들을 사용해서 강한 자와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 아닌가? 경전에도 그들의 연약함이 그대로 다 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연약함과 부족한 면들을 드러낸다고 하여 신앙을 의심하거나 교회에 대한 충실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색안경 끼고 바라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왜 그런 모습을 기록해서 우리의 신앙을 위태롭게 했냐면서 경전을 기록한 자들에게 삿대질을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와 달리 교회 지도자들의 약함을 근거로 교회의 참됨을 부정하거나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것들도 참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일이다. 홀랜드 장로님이 인터뷰에서 버벅거리면서 대답했다 한들 그것이 이 교회의 참됨을 부정하는 근거라도 되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인간적인 기대에 이르지 못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렇게 부족한 이들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더욱 깨달을 일이지 이를 근거로 교회가 거짓이니 뭐니 하면서 선동하는 이들도 애초부터 그릇된 생각을 가진 이들일 뿐이다. 왜 자꾸만 불완전한 인간을 근거로 진리를 판단하냐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적인 나약함과 약점으로 인해 지지하기 힘들어하는 지도자가 있다. 저 사람은 영감으로 인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로비를 잘해서 지도자로 발탁된 것이 아닐까 싶은 인간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분이 말씀을 하는 자리에는 참여하지 않는 분들도 알고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분들도 주변에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손을 들어 그분을 지지한다. 그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불러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지지하는 것이며 그가 위임받은 신권 권세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행했던 일들을 날카롭게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가 부름 받은 그 직위와 권세를 지지하기에 이로 인해 교회를 의심하거나 지도자를 지지하지 못하는 일이 없이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저런 사람도 사용하시는데 나 같이 부족한 이도 사용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의 그 깊은 지혜와 사랑에 감탄할 일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바로 연약한 자들, 그리고 단순한 자들을 통해서 그분의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복음의 충만함이 연약한 자들과 단순한 자들에 의하여 세상 끝까지 그리고 왕들과 통치자들 앞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니라.” (교성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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