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잡담

성찬식 말씀-회원 선교사업

모로나이 2017. 3. 18. 01:55





올해 우리 와드 목표가 무엇인지 기억하시나요? 벌써 2017년의 4분의 1일 지나갔는데 그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회원선교사업입니다. 그래서 초반에 우리들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의 목록을 생각해 보고 정리하는 시간도 가졌고 주기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 확인하고 상기시키는 일들도 하고 있습니다. 그 목표를 향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계신가요?

솔직히 말해서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회원 선교사업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여러차례 들어왔습니다. 구도자를 찾는 것은 회원의 임무이며 선교사들은 가르치는 것이 주된 임무라는 이야기도 지도자들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가 그렇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교회를 권유해 보았고 이제는 소개할 사람조차 없는데 주변에서 하도 그런 소리를 들으니 부담이 되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선교사업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조해도 그게 제대로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회원들이 선교사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구들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마자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가 조금이나마 선교사업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회원 선교사업을 강조하기에 앞서서 먼저 스스로가 선교사업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가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싶습니다. 회원 선교사업이 단순히 위에서 지시하는 무거운 책임으로만 여겨지고 참된 기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무리 위에서 강조하고 반복적으로 교육을 시켜도 그것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교사업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책임이며 특권입니다. 이는 전임선교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위임하고 우리는 단지 관망만 할 사항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하셨던 최후최대의 사명은 바로 복음 전파였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마태 28: 19,20)

경고를 받은 각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이웃에게 경고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교성 88:81)

 

그렇기에 교회에서 혹은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선교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면 부담으로 느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도 느끼고 책임감도 절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명령을 단순히 의무와 책임감에서 수행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태도와 기쁨으로 수행할 수가 있는 방법을 주님께서는 마련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에 대한 방법을 몰몬경에 나오는 생명나무 시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만큼 먹음직한 열매가 달린 나무 한 그루를 보았느니라.”

또 내가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매, 그것이 나의 영혼을 심히 큰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는지라. 나는 나의 가족들도 역시 그 열매를 먹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나니, 이는 그 열매가 다른 어떤 열매보다 더 먹음직한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니전 8:10~12)

 

그리고서 그는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듯 서 있었던 .새라이아와 샘과 니파이를 보게 됩니다.

 

내가 그들에게 손짓하고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이르기, 내게로 와서 다른 어떤 열매보다 더 먹음직한 열매를 먹으라 하였느니라” (8:15)

 

이 구절을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리하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영혼이 큰 기쁨으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족들(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려보았을 때 길을 몰라 헤매고 있는 가족들을 발견하고는 손짓하고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어떤 열매보다 더 먹음직한 열매를 먹으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영혼의 큰 기쁨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기를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3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다는 것은 속죄가 가져오는 축복을 맛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으며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의 경우도 생명나무가 구주와 그분의 속죄를 상징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해서 각 회원들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복음에 대한 감격을 느끼고 이 복음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우러나오게 하는 결정적인 방법은 바로 각 회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에 대해 묵상하고 그 권세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처럼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니 복음을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주는 그 권능을 체험한 이들은 누가 뭐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소망에 사로잡혀 있기에 선교사업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기쁘게 행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지도자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 사람이 진정으로 개종했는지의 여부는 그 사람이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지로 분별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리하이가 맛보았던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에 대해 알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속죄를 기억하는 성찬식에서 의미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서 그분이 주시는 따스한 음성을 느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중에도 개인적으로 경전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멀리 떨어진 그분의 자녀들에게 보내신 러브레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분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보내신 그 전 과정이 담겨 있는 경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 러브레터를 그냥 의무가 아닌 진지하게읽고 그 속에서 왜 예수께서는 전세부터 우리의 구세주로서 예정되셨고 그분을 예표하는 선지자들을 통해 그분의 탄생을 예언케 하셨고 절정의 시대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교회를 조직하신 뒤 속죄를 이루시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재림의 그 날까지 쉬지 아니하시고 그분의 교회와 선지자, 성신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과정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는 부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의 주일학교 과정인 모세서를 공부하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세상과 그 종말을 보여주시고 모든 사람의 자녀들을 보여주었을 때 모세가 한 말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이 일로 말미암하 나는 사람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아나니..” (모세서 110) 광활한 우주에 비한다면 우리 각자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들이라 불러 주시면서 너는 나의 독생자를 닮았다고도 하시고 결국 그 모든 이들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이 나의 일이요 나의 영광이다“(모세서 1:39)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 그의 독생자께서 희생하셨고 결국 그의 속죄의 피를 근거로 죄 없다 선언되면서 하나님과 다시금 살 기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 아닌가요? 리하이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경험했던 영혼의 큰 기쁨을 누리지 않습니까?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러한즉 이러한 것들을 땅의 주민들에게 알려, 거룩하신 메시야의 공덕과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 면전에 거할 수 있는 육체가 하나도 없음을 그들로 알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느냐.” (니파이후서 2:8)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 20:7-9)

 

우리 모두가 주변의 시선이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더라도, 예레미야의 심정처럼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 골수에 사무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마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마음을 우리 각자가 품고 있다면 굳이 선교사업을 강조하지 않아도 선교사의 영으로 불타 오르는 우리 모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