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에 “양심(兩心)없는 무신론자”라고 하여 3대째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한 청년이 증인의 허구성을 깨닫고 나와 무신론을 표방하면서 운영하는 채널이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과의 단절까지 감수하면서 진실을 찾아 나서며 행동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 과거 나의 모습의 일부분을 볼 수 있는 것 같아 채널 초기부터 구독하고 있는 곳이다. 나 역시 중3부터 고3까지 여호와의 증인과 연합하여 열심히 홛동하다가 수많은 오류와 잘못을 발견하고는 그만둔 사람이다. 부모님께 수차례 욕과 폭력을 당하면서까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나중에 스스로 그 거짓을 깨닫고 나온 경우로 여호와의 증인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카페 활동을 했었고 운영진이 증인의 진실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여호와의 증인 정보 카페’의 오래된 회원이기도 하다.
“양무” 동영상 운영진은 초반에 증인은 거짓되어도 성경만은 진실일 것 같아 성경을 알려준다는 목사와 신학생들을 찾아가면서 그들과 토론을 했는데 결국은 성경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결론을 내려 지금은 무신론의 입장으로 돌아가 관련 컨텐츠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 역시 증인은 거짓이지만 성경은 참일 것이라는 믿음에 수많은 교회와 종파들을 전전하고 목사님과 여러 성직자들과 수차례에 걸쳐 토론을 벌였다. 단순히 몇몇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각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그들의 모임에도 참석하고, 심지어는 그 단체에 가입해가면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했었다. 그러다가 한동안 답을 찾지 못하고 여러 무신론 서적들을 탐독하는 가운데 잠시나마 무신론자로 자처하고 활동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운영진과는 달리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일반 개신교회가 아닌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즉 몰몬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무신론에서 불가지론자로, 불가지론자에서 유신론,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느 곳이 진실된 곳일까라는 의문에서 성경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성경을 믿는 단체들 중에서는 과연 어느 곳이 참된 곳일까라는 의문 가운데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진리를 발견했다고만 말한다. 당연히 불가지론조차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에게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우리 교회가 참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오래 전의 일이다. 기독교 비평이라는 다음 카페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무신론의 입장에 있던 터라 관련 자료들을 읽다가 알게 된 카페인데 올라온 자료들의 비합리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되어 하나님과 성경을 옹호하는 글들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중에 극소수의 분들은 나름대로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내가 올린 글을 반박하고 비판하여 나름 건설적인 토론이 진행되었지만 대다수의 반응은 반말은 기본이고 욕설과 비아냥이 대부분이었다. 신이 없다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제시한다는 분들이 보인 분들이 보이는 그 여과되지 않은 감정적인 반응들, 그리고 그 호전적인 태도들은 더 이상 그들과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소모적인 감정 싸움은 원치 않았기에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최근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보면 갈수록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올라오고 댓글도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댓글을 달기로 했다.
내가 댓글을 달기로 선택한 첫 영상은 판다의 대한 내용인데 판다의 소화기관은 고기를 소화해야 마땅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고기의 맛을 느끼는 감각에 장애가 생겨서 고기는 먹지 못하고 맛없는 죽순이나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내용인데도 양무 운영자는 이것을 근거로 창조주라는자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판다를 창조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결국 신이 없다는 증거인 것인 양 무리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신론이 표방하는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환경에 더 잘 적응하게 해 주는 자연적인 이점을 타고난 생물은 살아남아 번식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들의 이점을 후손에게 전달하게 되며, 후손은 결국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용불용설이란 학설도 주장한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고 순전히 자연선택에 근거해서 모든 생물들이 진화를 한 것이라고 하면 도대체 팬더는 무슨 자연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고 하여 하루 종일 아무 영양가도 없는 대나무를 먹도록 진화했다는 말일까? 왜 장의 길이가 짧게 진화하여 고기를 먹어야 하는 팬더가 스스로 소화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죽순만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자연선택설을 그대로 따르면 팬더에게 고기맛을 느끼게 해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도무지 고기를 먹지 못하고 대나무만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멸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하게 해 주는 자연적인 이점을 타고난 생물’만 생존하고 그 외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자연적인 이점을 박탈당한 팬더 입장으로 보면 도태되어 멸종되는 것이 기정 사실 아닌가? 그리고 사실 팬더는 물고기와 설치류도 먹기 때문에 고기맛을 전혀 느끼지 못해 불가피하게 대나무만 먹는 것도 아니다. 또한 팬더에게 물어보았던가? 고기맛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차마 먹지 못하고 소화도 잘 안 되는 죽순만 먹어서 괴롭다고 하던가? 그저 몇몇 과학적인 이론을 근거로 팬더곰이 어쩔 수 없이 대나무만 먹어서 불쌍해 죽겠는데 그렇게 창조한 창조주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결론까지 내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그리고 하나 더. 만약 팬더곰에게 고기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고기는 못 먹고 주변에 있는 대나무나 씹어 먹어야 했다고 하면 무신론적 자연선택설 이론에 따라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성립되어야만 한다.
(1) 자신에게 일어난 돌연변이와 육식이 자연스러운 대장 기간의 부조화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되거나
(2) 육식이 자연스러운 대장 기간이 초식이 자연스러운 대장 기간으로 진화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되었나?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이론 어느 구석에도 적용될 것이 없다.
그럼 창조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팬더는 육식과 초식이 전부 가능하게 창조되었다는 것. 그래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를 먹기는 하지만 물고기나 설치류, 알, 곤충 등을 통해 단백질 섭취가 가능하다는 것. 육식의 맛을 느끼지 못해 맛없는 대다무나 씹느라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기들 생각으로 상상한 것일 뿐 직접 팬더에게 물어서 그 느낌을 알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
신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판다의 소화 기간을 예로 들었던 동영상에 자연선택설을 들먹여도 판더의 이야기는 설명될 수 없음을 주장하니 자연선택설은 단순히 확률 문제일 뿐이며 모든 경우에 다 정확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답변이 올라왔다.
자연선택설이 확률 문제라는 것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판다의 이야기를 걸고 넘어지면서 신이 없다는 결론으로 내려버리는 그 어처구니없는 논리적 비약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관대한 것일까?. 확률의 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몇몇 사례들에 대해 그토록 편이하게 생각을 해가며 ‘항상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인간의 시점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몇몇 생명체들을 이유로 들어가며 ‘창조주가 있다면 이렇게 창조했을까?”라고 하며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무슨 근거를 기초로 한 것이던가?
어떤 제작자가 물건을 만들었는데 그게 우리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고 하여 ‘내가 제작자라면 물건을 이따위로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물건을 제작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
피카소가 ‘게르니카’라는 유명한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에 문외한이거나 현실적인 모습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 그림이 왜 이따위로 생겼어? 내가 정말 유명한 화가라면 그림을 이런 식으로 그리지 않아. 따라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애초에 없거나 초등학생 수준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그린거야.”라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 아니 무신론자의 시각에서는 이런 결론까지 나온다. 이 그림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내 기호에 맞지 않으며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애초에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고 방식인가?
그러나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더라. 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전염병이나 전쟁과 범죄가 있으면 안된다고. 그런데 정말 웃긴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염병이나 전쟁, 범죄 등은 양육강식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전염병이야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일일 것이고 약자는 어쩔 수 없이 도태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무신론적 입장에서 보면 전쟁이나 범죄 역시 옳고 그름의 여부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사라져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가피한 일 아니냐는 말이다.
그렇게 신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이 재난들에 대해 왜 한탄을 하고 그러한 세상을 원망하며 신을 부정해야 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또한 어떤 이는 부모들은 자식이 청산가리 못먹게 교육하는 동시에 누가 속여도 못먹게 하며 속인놈을 족치든 쫓아내고 못먹게 해야 하는데 절대선(하나님)이라는 작자나 되서 자기가 불완전한 자식(아담과 이브) 만들어놓고 악(선악과)도 방치해두고 죄를 물어 고생하게 하겠다니 있다 신이란 존재를 가정해줘도 얼마나 어벙한 수준이겠는지 되물었다.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자녀를 키워보지 않았나 보다고. 아기가 걸음마를 하기 위해 여러 번 넘어지는 과정이 필요한데 넘어지는 일이 없게 계속 붙들어 둔다면 아이가 제때 걸어 다닐까? 아이들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거나 수술을 받는 과정이 너무 아프다고 못하게 해야 하나?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독립할 수 있도록 고통 받는 순간이 오더라도 때로는 멀리서 지켜봐야 할 때가 있는데 그걸 부모라는 이름으로 일일이 챙겨주면 그 아이가 제대로 성장이나 하겠는가? 아이가 성년이 되어 결혼할 나이에도 자립하지 못하고 매번 부모님에게 용돈이나 받으면서 케어 받는 과정을 보고 싶은 부모가 어디에 있나? 힘들지만 스스로 극복하는 가운데 성장하는 자녀의 모습을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 아닌가?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아담의 타락을 청산가리를 못먹게 교육하면서 방치하는 무책임한 부모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는다. 자녀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특권과 동시에 책임을 부여하고 그가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하는 부모님의 교육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도록 자녀를 가르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이걸 모르면 아이가 걸음마를 하는 과정에서 넘어지는데도 가만히 바라만 보는 부모나, 아이가 성년이 되어도 부모님께 요구하는 자녀를 일일이 돕지 않는 부모를 그저 어벙하거나 책임감 없는 부모라고 보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처럼 무신론적 자연선택설로 설명될 수 없으며 지성과 능력을 가진 어떤 초월자에 의해 조직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수많은 근거들이 있는데도 그저 몇몇 사례들을 근거로 초월자가 있다면 그따위로 창조하냐는 둥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것이 이 채널의 주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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