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열왕기하 2장 23,24)
성경에 대한 이해는 사람들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저는 구약 성경의 상당 부분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것을 기록한 저자의 의도와 행간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기록될 당시의 배경을 염두에 둔 해석의 문제이지 특정 사건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이 없다는 식의 결론을 내릴 근거는 없다고 봅니다.)
엘리사 대머리 사건(?)을 문자 그대로 읽고 이해를 하려면 말 그대로 어린 아이들이 엘리사가 대머리라고 놀렸다고 곰이 나타나 그 아이들을 찢어 죽여 버렸다는 엽기적인 이야기가 될 뿐입니다. 기독교와 성경을 반대하는 이들이 단골메류로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일 뿐, 그 스토리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가 핵심이며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지요.
1. 작은 아이
젊은 아이들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원 의미는 어린 아이가 아닌 젊은이거나 나이가 든 종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존경해야 할 어른을 조소하거나 시비를 거는, 우리 식으로 보면 건달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선 '아이들'로 번역된 23절의 וּנְעָרִ֤ים קְטַנִּים֙(나아림 카타니임)에서
קטן(카탄)이라는 형용사는 "작은" 혹은 "어린"이라는 뜻이고 נער(나아르)라는 명사는 "유아기 ~ 결혼하기 전"의 연령대를 두루 이르는 말로서, 20살 무렵의 솔로몬이나 17살 시절의 요셉처럼 건장한 청년들을 지칭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이들'로 번역된 24절의 ""יְלָדִֽים"(엘라드)라는 명사는 그냥 "어린이"라는 뜻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사전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어 “카탄”이란 형용사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en.wiktionary.org/wiki/%D7%A7%D7%98%D7%9F
Adjective
קָטָן • (katán) (feminine קְטַנָּה, masculine plural קְטַנִּים, feminine plural קְטַנּוֹת)
1. Little, small, diminutive. (작은, 아주 작은)
2. Little, young. (작은, 어린, 젊은)
3. Little, insignificant, unimportant. (작은, 대수롭지 않은, 하찮은)
“나아림”은 명사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요.
en.wiktionary.org/wiki/%D7%A0%D7%A2%D7%A8
Noun
(biblical) non-infant child (태어나지 않은 아이)
(biblical) boy, physically able young man. Also, a servant.
(소년, 신체적으로 젊은 남자, 혹은 종)
그리고 24절에 아이들로 번역된 옐라딤은 명사로 다음과 같습니다.
en.wiktionary.org/wiki/%D7%99%D7%9C%D7%93
Noun
A (male) child, a (male) kid, a boy: a young (male) person.
(남자 아이, 소년, 젊은 남자)
(specifically) A son, a (male) child, a (male) kid, a boy: a person's (male) offspring.
(derogatory) An immature adult; kid, child. (미성숙한 어른, 아이)
(among children and teenagers) Used of a (male) peer of one's own age group.
사실 단어의 의미만 두고 보면 암콤에게 당한 이들이 정말 꼬마 아이들인지, 청소년인지, 아니면 청년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카탄’이라는 형용사가 들어가면 어린아이만을 지칭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전적 의미만 두고 보면 그 형용사가 단지 어린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찮고 보잘 것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대구로 나온 24절에 나온 엘라딤이라는 명사가 어린 아이로만 사용된다고 주장하시는데 이 단어 역시 ‘미성숙한 어른’을 의미한다고 하지요. 특히 또래 집단에서 서로를 지칭할 때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모습에서 그 아이들의 정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당시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어린이와 성인의 구분점이 애매한 것이 당대는 12~13세면 성인으로 보았고 결혼 적령기는 13~18세였으니 현재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당시에 성인인 10대 초반 아이들을 초등학생 꼬마 아이들 수준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만을 두고 논의를 할 것이 아니라 그 단어들이 사용된 전후 맥락과 배경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2. 벧엘에서 올라온 아이들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갔을 때 그 성읍에서 작은 아이들이 나와 엘리사를 조롱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벧엘은, 북이스라엘왕국의 종교중심지였는데 여로보암 왕이, 최북단의 단과 최남단의 벧엘에 송아지우상을 세워놓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라고 한 것이 전통이 되어서, 혼합종교의 대변지가 된 곳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또한 벧엘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서 그 사제들을 위한 훈련장이 있던 곳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벧엘 성읍에서 무리 지어 나온 그 아이들은 우상숭배의 사제들로서 훈련을 받은, 일종의 신학생들이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비아냥 거리고 모독하는 건달이라고 볼 수 있지 오늘날 우리 주변에 뛰놀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죠.
3. 대머리라고 놀린 일.
아이들이 그저 엘리사에게 머리숱이 없어서 놀린 개념이 아닙니다. 당시 대머리는 율법에 의하면 인공적으로 머리를 깍아 대머리가 되게 하는 것은 불법으로 되어 있으며(신 14:1) 문둥병에 의한 것으로(레 13:42-44)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의 표징으로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천민으로 간주했던 심각한 욕이라고 봐야 합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대머리여! 라는 말은 치욕으로 간주되었으며 여기서는 경멸이나 조롱에 대한 형용 어구였습니다(사 3:17, 24)
그러니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건달들이 엘리사에게 심각한 모독을 준 행위라고 이해를 해야겠지요. 그리고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말은 하늘로 승천했던 그의 스승 엘리야를 비꼬면서 너도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버리라는 조롱한 것입니다. "대머리야 올라가라“는 말은 그저 엘리사의 겉모습만 보고 놀린 것이 아니라 하늘로 승천했다는 엘리야의 일을 빗대어 엘리사에게 ”너도 그렇게 죽어라“고 비아냥 거림으로서 엘리사 뿐만 아니라 엘리야와 그를 승천하게 만든 하나님까지 모욕하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벧엘의 우상숭배 예비 사제들로서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집단으로 몰려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모독하는 일에 집중한 이들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들의 난폭한 행태가 그냥 방치되었을 경우 그들이 살던 시민들에게 어떤 행패를 부렸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것이 분명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엘리사는 이런 극적인 사건을 벌어지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 엘리사가 직접 하나님께 요청하여 곰이 등장하여 그들을 죽게 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학자들의 주장처럼 이 건달들이 새끼곰을 죽여서 그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마침 그 때 어미 곰이 나타난 행패를 부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과 그분의 선지자가 위협을 받거나 조소 거리가 될 수 없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깨우쳐 주기 위한 목적에서 (과장이 가미된 상태에서)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해도 반응은 동일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어떻게 곰 두 마리가 나와서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겠죠. 문자 그대로 이해를 하던지, 아니면 당시 우상숭배가 팽배하던 시기 경각심을 주기 위한 방식으로 과장되었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당시 시대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이해를 해야 하지 그걸 현대인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되는 것을 명심해야하는지는 추후 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사실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과거의 기록을 현대의 시각으로 읽는다면 우리 정서상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성군이라 칭하는 세종대왕에게 소헌왕후 심씨부터 여러 후궁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 어느 누구도 현대의 시각으로 “백성를 위한다는 왕이라는 작자가 왜 이렇게 많은 여인들을 부인으로 맞이하는지 이거 여성을 한낱 노리개로 생각하는 변태 아닌가?”라고 세종 대왕을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른 이라고 말할 이는 없다고 봅니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 일기’에 따르면 첫 출진인 옥포 해전 출진 하루 전에 군졸인 황옥현(黃玉玄)이 군영을 탈영해 도주하는 것을 붙잡았는데, 이순신은 이 황옥현의 머리를 그대로 참수했다고 합니다. 명량 해전이 발발하기 전에 훔친 소를 끌고 가던 절도범들이 왜적이 온다고 떠벌리고 다니자 이들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도 있죠, 절세 영웅인 이순신 장군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탈영했다고 목을 베고 ,절도범들이 왜적이 온다고 떠벌리고 다녀서 목을 베었다고 그를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잔인무도한 살인마로 보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이를 우리는 다 당시 상황에 따른, 혹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로 인해 세종대왕을 성범죄자로, 이순신 장군을 잔인무도한 전쟁광이라는 식으로 보지 않아요. 물론 현대 시각으로 보면 정서상 이해하기 힘듭니다.
또 볼까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을 우리는 “의사”((義士))라고 부르며 존경합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일본인들은 안중근을 한 나라의 수상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이처럼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각 사람이 갖고 있는 사관에 따라 전혀 반대의 인물이 됩니다.
엘리사의 대머리 사건(?)이나 그 외 우리 현대 시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정서상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판단도 이와 같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해야지요. 그저 기록으로 남겼다고 하여 그것을 우리의 정서적 잣대로 보고 판단하면 정작 그 사건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의미는 놓치고 오히려 왜곡할 우려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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