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아담스 밴드( Adam’s Band)라는 선교단체를 운영하는 ‘마이카 와일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린 와일더의 책 “Unveiling Grace”라는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그와 그의 가족들의 (몰몬에서 개신교로의) 개종 이야기는 참으로 드라마틱합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충실한 교회 회원이었던 마이카가 부푼 가슴과 열정을 가지고 선교사업을 나가게 되며 그곳에서 침례교 목사와 만나게 됩니다. 그 목사에게 회복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마이카에게 그 침례교 목사는 그에게 신약 성경을 읽으라는 도전을 주며 실제 선교사로 봉사하며 마이카는 18개월 동안 신약 성경만을 읽고 기독교의 참된 “복음”을 깨닫게 되어 몰몬교가 거짓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향으로 인해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선교사 동료들, 집안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결국 부모님들(그 중에 어머니는 BYU 교수)도 참된(?) 예수를 영접하게 되어 모든 가족이 교회에서 나와 개신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한 몇몇 이들과 아담스 밴드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음악을 연주하면서 몰몬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 사역을 하며 자신의 간증을 나누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린 와일더의 “Unveiling Grace”라는 책을 구입해서 읽었고 실제 마이카가 가족들에게 권유했던 것처럼 ‘신약 성경’만을 읽으면 몰몬교가 거짓임을 깨닫고 참된 복음을 알게 될 수 있다는 제안에 따라 가능한 편견을 내려놓고 판단하기 위해 신약 성경만을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정말 교파에 매이지 않은 참된 구원의 방식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 후기성도로 머물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성경에서는 구원이란 믿기만 하면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인데 후기성도에서는 행함을 강조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일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을 터이고, 동일한 가르침을 받았을터인데 누구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했으며 누구는 하나님의 풍족한 은혜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지요. 특히 신약 성경만을 읽고 내린 결론도 이렇게 다르니 말입니다.
마이카가 주장하는 것처럼 상당수의 개신교회에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후기성도가 행함의 중요성을 믿고 강조한다고 하여 율법주의자며, 구원의 은혜를 훼손시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가 아닌 바울 서신의 일부를 집중적으로 인용하면서 우리 구원에는 행함이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후기성도들은 우리의 행함을 근거로 천국에 이른다고 믿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획득’한다는 식으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후기성도가 행함을 강조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신조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나오는 오해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오직 믿음”이란 신조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이 행함과 구원은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마이카가 신약 성경만 읽으면 구원이란 전적으로 믿음으로 근거한 것임을 믿을 수 있다고 했지만 과연 그러한지 신약 성경의 구절의 몇몇 구절들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 2:19)
귀신들, 즉 사탄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아니 오히려 사탄은 믿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하나님과 함께 했었고 그분에게 대항하여 추방까지 당한 존재이니 그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테지요.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사도 19:15)
이 구절에서도 알겠지만 사탄은 예수를 단순히 믿는 것 이상으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고 예수를 잘 알고 있는 사탄은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이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럼 단순히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 이상으로 구원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 있단 말일까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 7:21)
의문의 여지 없이 단지 누군가 그리스도를 믿고 주로 고백한다고 하여 다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무엇을 행해야 구원받는다고 알려줍니까?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 16:16)
그렇습니다. 단지 믿기만 한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 사실을 믿지 않은 자들은 정죄를 받는다고 하였지요,
실제로 베드로가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성령의 감화로 찔림을 받은 자들이 외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 해야하겠는가..하고 말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사도 2:38-40)
회개하여 침례를 받아야 죄사함을 받게 되는데 그 때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약속은 모든 이들에게 향한 것이기에 이를 행하여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외칩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말로서 고백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고 회개하여 침례를 받고 성신을 받으라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죄가 사함을 받으며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또 그것도 아닙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 10:22)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 24:13)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미움을 받고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몇몇 구절만 살펴봐도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 단지 믿는 것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 1:2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1서 3: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딤전 618)
마이카가 강조했던 신약 성경에는 이렇게 행함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후기성도들 역시 주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며 단지 믿음만이 아닌 말씀에 기록된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지상생활을 하시면서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지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한 9:4)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요한 10:37)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이 하나님을 행하지 않으면 당신을 믿지 말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이시며 우리가 행해야 할 바들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모범대로 하는 후기성도를 율법주의자며, 행위구원자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시하는 자라고 비판할 만한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 20:12,13)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 16:27)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디모데후서 4:14)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 3:8)
위에서 언급한 구절을 보면 우리가 마지막 날에 심판대에 서 있을 때 단지 믿음을 가졌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라 각 사람이 행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거나 상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이런 구절에 대해 어떤 이들은 행함이란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럼 심판 받기도 전에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질문을 하면 이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행함이란 주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충성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 행함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이며 그런 행함이 없는 믿음이나 사랑은 공허한 것일 뿐이지요,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 2:24)
이 구절에서도 말하고 있지요.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단지 믿음으로만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우리의 믿음이 행함으로 뒷받침되었을 때 그것이 참된 믿음이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하나인 것이지 누구의 말마따나 서로 구분된 것도, 적대적인 개념도 아닙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 2:20)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 2:26)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믿음(신앙)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 고백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이어진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 없는 믿음 자체는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디도서 1:16)
이 구절도 보세요. 하나님을 시인할지는 몰라도 행위로는 부인하게 되면 가증한 자라고 하지 않던가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행함은 전혀 필요 없고, 행함을 강조하게 되면 믿음으로 인한 구원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많이 봤는데 이들을 향해 성경에서는 복종하지 않은 자, 가능한자,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약 성경의 구절만을 인용하여 진정한 믿음이란 단지 내적 고백만으로 되어서는 안되며 행함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야 구원에 이르는 산 믿음이 되는 것이고 각자가 믿음대로 행한 바에 따라 심판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맥락을 두면서 마이카가 인용한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5)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 1:7)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 2:8,9)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도 15:11)
이 구절들은 의로운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고 알려줍니다. 사실 이 구절들은 앞서 언급한 행함의 중요성을 다룬 구절들과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인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믿음이 선행되지 않은, 그저 전적으로 자신의 행함이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개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하고 구제를 한다고 하여도 우리의 공로만으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바리새인이 기도를 할 때 “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누가 18:11,12) 자신의 공로만을 의지하여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자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세리처럼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누가 18:13)고 했던 것처럼 아무리 의롭게 행하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속죄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떠한 형태도건 후기성도는 우리의 행함만으로 의롭게 되어 천국에 간다고 믿지 않으며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믿음은 행함으로 이어져야 하기에 구원을 위한 참된 믿음은 단순한 신앙고백이나 내적 동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을 뿐입니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아무리 의롭게 주님의 뜻대로 행동한다 한들, 그 행위 자체만으로 구원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 역시 주님의 속죄와 그분의 은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함을 강조하고 계명대로 살고자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닌 무익한 종임을 더욱 깨닫게 될 뿐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 17:10)
구원으로 이끄는 믿음에 단 하나의 행함이라도 강조하면 그 믿음과 은혜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믿는 행위론자라고 비판하는 것은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성경의 일부 구절만 집착하고 믿고, 다른 구절들은 다 무시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마이카가 신약 성경을 읽으라고 권유했지요. 그렇게 되면 참된 복음을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신약 성경을 읽었고, 실제 신약 성경만을 통해 참됨 믿음이란 단지 내적 동의가 아닌 행함이 뒷받침되어야 참된 믿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님의 계명대로 생활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구원 받는 것은 그분의 은혜임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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